오피니언 사설

정치 비상사태 풀려면 대통령과 국회 지도부 만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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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치 비상사태’ 속에서 새해가 출발하고 있다. 1일부터 현행 국회의원 선거구가 무효가 된 무법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여야는 협상능력을 상실했고, 독립기구인 선거구획정위는 여야 대리전을 벌이다 기능을 포기했다. 국회의장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 현장에서는 선거구 실종으로 불이익을 겪고 있는 정치신인 예비후보들이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이런 상태로는 4월 총선이 끝나도 선거무효 소송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임시국회가 8일 끝나지만 노동 5법과 경제활성화법·테러방지법·북한인권법 등 시급한 입법 현안이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제1 야당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분당 사태에 휘말려 중심을 잃고 있다. 어제는 청와대에서 열린 신년 인사회에도 불참했다. 이 정권 들어 처음이다. 이 나라는 지금 심각한 ‘정치 비상사태’에 처해 있다. 이런 작동불능은 국회를 넘어 행정부에도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정의화 국회의장, 여야 대표가 시급히 머리를 맞댈 필요성이 대두된다. 여야 영수회담을 넘어 대통령-국회지도부 회동이 열려야 하는 것이다. 물론 간극이 워낙 커서 사전 합의를 이루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유례없는 정치 비상사태와 경제입법 위기를 맞아 행정부와 입법부의 수뇌부가 같이 책임을 지고 대책을 협의하는 모습만 보여도 국면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대통령은 논란이 되고 있는 위안부 협상의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노동개혁을 포함한 시급한 법안의 국회 통과를 요청해야 한다. 국회의장은 대통령에게 특정 법안을 직권 상정할 수 없는 국회법의 내용을 설명할 수 있다. 야당은 위안부 협상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경제입법 등에 관한 의견을 개진해야 할 것이다.

 국가의 ‘정치수뇌부’가 대화 분위기를 만들면 선거구 문제에도 숨통이 트일 수 있을지 모른다.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 희대의 혼란사태를 걱정하고 해결을 모색하는 진지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상징적으로라도 중요하다. 구체적인 해결책이 등장한다면 더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