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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문영의 호모디지쿠스] “100년 묵은 육포처럼 질긴 고집” “엠보싱처럼 소름” 감각적인 인터넷 표현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인터넷에는 참 재미있는 표현이 많다. 이런 표현들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유래되거나 무명씨의 댓글에 의해 툭 던져지듯 등장한다. 그래도 펄떡거리는 생명력 때문에 여러 게시판에서 오랫동안 회자된다. 먼 훗날 인터넷 고고학이 생긴다면, 우리 후손들은 이런 ‘언어화석’에서 이 시대의 감성과 흔적을 밝혀낼지 모른다.

 “설마 믿는 순두부에 이빨 빠개지는 일은 없겠지.” “아니, 그게 무슨 샌드위치에서 미나리 나오는 소리?” “새댁이 끓인 콩나물국처럼 싱거운 사람이네.” “100년 묵은 육포처럼 질긴 고집이구먼.” 이런 표현들은 혓바닥을 자극하는 미각 언어다. 이 시대 사람들은 식도락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끼고 삶의 의미마저 부여했다. 그 맛과 향이 양념처럼 언어 속에 녹아 있다.

 “쓸데없이 고퀄(리티)” “생긴 것이 저화질이라 죄송합니다” “아주 200만 화소로 꼴값을…” “그녀를 바로 앞에서 봤다니, 그 시신경 삽니다” “안구야 힘을 내” 같은 인터넷 표현들은 시각 언어다. 비주얼 중심 시대는 가상현실이든 증강현실이든 보여주고 보는 것이 정보 교환의 중심이 됐다. 이러한 가치는 육체적·해부학적으로 시각 매커니즘을 파고 들었다. 이에 따라 해상도라는 기술적 지표가 퀄리티(품질)의 기준이 됐다.

 인터넷의 표현들은 기존 클리셰를 거부하는 반항과 파격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반말에서 갑자기 존댓말로 반전돼 유행했던 “너나 잘하세요”와 같은 유형들이다. “아니 그게 무슨 공든탑 같은 소리야?”(공든탑이 무너진다는 속담에서 온 말로 무너지지 않아야 할 공든탑은 이제 안 무너지면 이상한 탑이 되어 버렸다), “누가 볼지도 모른 척하고 빨리 뽀뽀해 줘”(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사례로 적합한 반전 표현이다), “네 이 녀석 ! 네겐 피도 국물도 없다”(피도 눈물도 없다는 표현과 국물도 없다는 표현이 뒤섞였다), “굴러 들어온 복에 프리킥”(굴러 들어온 복과 축구에서 걸핏하면 잘못 차서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는 프리킥이 만나 안타까움을 더한다) 등은 얼핏 들으면 익숙해 보이지만 뜻과 사용하는 결은 사뭇 다르다.

 감각을 더 적극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이 시대는 온몸을 뒤틀어 표현한다. “쓸데없는 걱정일랑 모공 깊숙이 숨겨두고” “너무 놀라서 염통이 쫄깃해졌어” “비밀이 노인네 소변처럼 찔끔찔끔 새어나가는 느낌” “올록볼록 엠보싱처럼 소름 돋는다” “더워서 몸에서 고기 삶는 냄새가 풍기네” “후비면 후빌수록 더 안쪽으로 들어가버리는 코딱지 같았던 짜증나는 나날들” “온몸의 땀구멍이 입이라도 할 말 없구나” 등은 신체 구석구석을 감각 언어에 동원한 것들이다.

 신용카드가 지배하는 시대는 “겁을 일시불로 상실한 녀석” “방대한 스케일의 카드 값” 등의 표현으로 나타났다. 급증하는 ‘가족 해체와 1인 가구’와 관련해서는 “외로움이 텍사스 소떼처럼 몰려오는”이라는 과장법이라든가 “고질라 같은 마누라와 도끼 같은 자식들” “무기농법으로 키운 소중한 내 딸”과 같은 역설적 표현이 눈길을 끈다. 게임에서 유래된 “저글링처럼 생기는 캠퍼스 커플” “트롤에게 먹이를 주지 마라”(괴물에게 먹이를 주면 난리가 나듯이 이슈거리를 던져 논란을 만들지 말라는 뜻) 등도 위트가 돋보인다.

 검색해 보면 이런 표현들을 알뜰히 모아 놓은 글도 있다. 단순 재미로만 볼게 아니라 잘 다듬고 기록해둘 만하다. 이런 표현들은 한때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 “며느리도 몰라” “릴레함메르”(겨울올림픽이 열렸던 도시로 썰렁하다는 뜻) 등 전성기를 구가했던 유행어나 “심쿵” “뇌섹남” “행덕”(행복한 덕질) 같은 신조어·축약어와는 조금 다르다. 전 국민의 일시적 유행도 아니고 일부 네티즌만의 폐쇄적 은어도 아니다. 오히려 누구나 들으면 이해할 수 있고 그때그때 시대상을 따라 감각적으로 변용되고 있다. 이제 “새 발의 피”는 “새 발의 피의 적혈구”로 심화됐고 “자다가 봉창 뚫는 소리”는 “오밤중에 끓는 물 마시고 벽 치는 소리”로 현대화했다. 워낙 빠른 세상 따라가기도 벅찬데 그새 또 새해가 왔다.

임문영 인터넷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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