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문제 팔 걷은 '괜찮은' 세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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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호주제는 꼭 폐지되는 거죠?"

"오는 9월 국회에서는 통과되겠죠."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로비가 필요해요."

호주제 폐지에 앞장 선 여성운동가들의 전략회의에서나 나올 법한 대화다. 그러나 이 대화의 주인공이 남자라면? 연 이틀 장대비 사이로 반짝 햇살이 비치던 지난 25일 오후. 기자는 서울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괜찮은' 남자 3명을 만났다.

호주제 폐지 운동의 홍보대사로 나선 인기배우 권해효(38)씨, 여성행정만 꼬박 10년간 해 온 여성부의 김태석(46) 기획관리심의관, 여성의 전화의 청일점 활동가 유재언(30)씨.

물론 기자의 요청에 따라 처음 만난 자리였다. 그런데 앉자마자 대뜸 꺼낸 대화가 호주제 폐지 운동이다. 이쯤 되면 '멋있는' 남자란 표현이 더 어울릴까.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위해=권해효씨는 자신이 언제부터 여성운동과 인연을 맺게 됐는지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더듬어 보니 지난해부터 3.8 세계여성의 날 행사에서 사회를 봤고, 서울 여성영화제 폐막식에서도 마이크를 잡았고…. 무슨 인연이 있느냐는 질문에 "꼬리에 꼬리를 물었네요"라고 답한다.

1996년부터인가, 양심수 석방운동에 공감해 동참한 게 인연이었다.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 후 이런 저런 시민단체의 요청이 이어졌다.

"호주제 폐지 운동이 여성운동이라고 생각지 않아요. 소수자(minority)를 위한 인권운동이죠." 인류의 절반이 여성인데 소수라니? 목소리가 대변되지 못하고 파워가 없으면 소수며 약자란 게 권씨의 설명.

호주제의 문제점을 깨닫게 된 건 지난해 6월에 태어난 딸의 출생신고를 하러가서였다. 아내의 본적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는 권씨의 말에 동사무소 직원은 어이없어 했다.

결혼하면 아내는 남편의 호적을 따른다는 설명이었다. "순간 딸 생각을 하니 황당하더라고요.호적을 파 간다'는 말의 의미를 그때 깨달았지요."

지난해 호주제폐지 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부터 여성문제에 대해 공부도 많이 한다. 2년 전부터는 여자가 접대하는 룸살롱에 가지 않는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동료들과 어울려 룸살롱에 갈 때도 있다. 그러나 접대부가 나오면 슬며시 빠져나왔다. "최소한 나 스스로 깨끗해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재미있게 사는 걸 좋아하는데…"라는 말을 남기며 자리에서 일어선 권씨. 다음 행선지는 북한 어린이 기아문제 포럼이란다. 평소 그의 '사람냄새' 나는 연기가 결코 과장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행정 10년 지킴이=사실 여성부 김태석 국장의 인터뷰는 그의 여자 동료의 제보(?) 덕분이었다.

어느날 김국장이 퇴근을 했더니 전업주부인 아내가 외출을 했더란다. 쌀을 씻어 밥을 앉히던 김국장이 갑자기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여자를 위해 사는 게 내 팔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도 밥을 잘 해서 아이들과 함께 먹었다고 다음날 재미있게 얘기했다는 것.

김국장은 이런 얘기를 부담없이 한다. 그렇다고 과장하지도 않는다. 여성이 7할쯤 되는 여성부에서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여성 동료를 존중하며 일을 잘 해 나간다.

92년 여성부의 전신인 정무제2장관실에 발을 디딘 후 여성특별위원회.청와대 여성정책비서관실을 거쳐 여성부까지 왔다. 중간에 교육부에 1년간 근무한 것을 빼면 딱 만 10년 세월이다. 공직 생활 22년 중 절반 정도다.

강산이 변할 시간 동안 한국 여성이 처한 현실도 많이 바뀌었다. 김국장도 한 몫했다. 95년 제정된 '여성발전기본법'은 자타가 인정하는 그의 작품. 그밖에도 성폭력특별법 등 제정에도 보이지 않는 역할을 했다.

"어릴 적 누나들을 보면서 여성이 차별받는다고 느꼈다"는 그는 "행정고시에 합격했으면 내무부에나 근무하지…" 하시던 아버님께서 요즘은 여성정책을 잘 개발하라는 말을 하신다며 웃는다.

"몇년 전 나이든 지방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여성정책 특강을 하러 갔을 때 대부분이 외면해 등에 땀이 났다"는 그는 "여성부가 필요없는 세상이 될 때까지 여성부와 함께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인기 만점 청일점 총각 활동가=당초 유재언씨가 여성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여성운동에 대한 비판 의식 때문이었다.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이던 99년. '어느 안티 미스코리아의 반란'이라는 시집을 우연히 보게 됐다. "처음엔 솔직히 화가 났어요. 공격적인 태도도 맘에 안들었고요." 그런데 다시 읽어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 시집의 저자인 고은광순씨가 열렬한 호주제 폐지 운동가라는 점 때문에 유씨도 이 운동에 적극 뛰어들게 됐다. 사이버 '마초' 들과 논쟁을 하면서 입에 못담을 욕도 많이 듣고 "여자지?"라는 의심도 많이 샀다.

그럴수록 여성단체의 열악한 현실에 공감하고 여성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급기야 그의 존재를 알아 본 여성의 전화가 그에게 활동가로 일해 줄 것을 요청해 지난해 10월부터 정보화 업무를 책임지고 있다. 홈페이지 관리는 물론 여성문제를 취재해 글을 올리기도 한다.

"남편으로부터 폭력을 당했다며 상담해 오는 여성들을 보면서 새감 놀라곤 합니다." 상담 전화를 걸었다가 남자 목소리를 듣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경우도 있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준 유씨는 자신과 같은 일등 신랑감을 몰라주는 미혼 여성들이 야속하다고.

문경란 여성전문기자 <moonk21@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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