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양도세 불합리한 부과 … 연말 증시 요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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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개인투자자 손모씨는 얼마 전 코스닥 상장사 에스코넥 주식 261만2000주를 한꺼번에 팔아치웠다. 326만5000주를 보유해 지분율이 5%에 달했던 그는 주식 매도로 지분율이 1%로 낮아졌다. 손씨는 이에 따라 앞으로 주식을 매매해 차익을 올려도 양도소득세를 물 필요가 없어졌다. 내년부터 강화되는 개정 소득세법상의 과세 대상인 대주주 요건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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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양도세 강화를 골자로 하는 개정 소득세법 시행을 앞두고 증시가 요동을 치고 있다. 개인 투자자가 ‘팔자’ 행진에 나서면서 28일 코스피 지수는 배당기준일로는 16년 만에 최대폭인 1.34% 하락했다. 박석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28일이 내년 양도세 과세대상 대주주 지위를 확정짓는 날이라는 점이 수급에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지수가 많이 하락했다”고 말했다.

대주주 요건 확대의 그늘
28일에 내년 과세대상 대주주 확정
큰손들 세금 피하려 11일간 2조 매도
어제는 2000억대 순매수로 반전
연말에 팔고 되사는 행태 반복 우려

 일반 투자자와 달리 대주주는 주식 양도차익에 대해 양도세를 내야 한다. 대주주 범위에서 빠지려면 28일까지 ‘대주주 기준선’ 아래로 주식을 내다 팔아야 했다. 특히 내년부터는 대주주의 범위가 확대된다. 현행 대주주 기준은 ▶지분율 2% 이상 또는 평가액 50억원 이상(코스피), ▶지분율 4% 이상 또는 평가액 40억원 이상(코스닥)이지만 내년 4월 1일부터는 각각 ▶지분율 1% 또는 평가액 25억원 이상, ▶지분율 2% 또는 평가액 20억원 이상이 된다.

 개정 세법이 증시에 압박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조짐은 이달 초부터 나타났다. 코스피 시장에서 개인투자자는 28일까지 11거래일 연속 매도 우위를 보였다. 이 기간 동안의 개인 순매도액은 총 2조2791억원. 최근의 개인 순매도액 중 상당 부분이 대주주 범주에서 벗어나려는 ‘슈퍼 개미’들의 매도였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대주주 결정 이벤트’가 끝나자마자 개인투자자의 매도 행진이 멈췄다는 점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개인투자자는 29일 2643억원의 매수 우위를 보였다.

 정부와 정치권은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과▶‘부자 과세’를 통한 소득재분배 효과▶선진국에서 주식 양도소득에 대해 과세하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이달 초 세법을 고쳐 대주주 범위를 확대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2013년 이전만 해도 코스피 기준 대주주 인정 범위는 주식평가액 100억원 이상이었다. 그러다가 그해 절반인 50억원으로 낮아졌고, 내년부터 그 절반인 25억원으로 낮아지게 됐다. 차주용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불과 3년 만에 과세 대상자 기준이 원래의 25%, 즉 ‘반의 반’ 수준으로 낮아졌다”며 “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범위가 너무 빠른 속도로 확대되는 건 부작용을 낳을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대주주에 대한 과세 확대가 장기투자 문화 정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투자 목적의 고액 개인투자자는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매년 연말에 주식을 대거 팔았다가 다시 사는 행위를 반복해야 한다. 법에 규정된 내용이긴 하지만 대주주 여부 판단 시점을 실제 주식 매도 시점이 아니라 직전 연말 배당기준일로 못박은 데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있다. 투자자가 아닌 과세당국 편의주의 아니냐는 얘기다. 이대로라면 내년 연말에도 대주주 요건에 해당되는 개인투자자가 주식을 대거 내다 팔 가능성이 크다. 연말 변동성 확대 현상이 구조적으로 재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증시에도 부담이 된다. 박석현 연구원은 “한 종목을 25억 원씩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지분을 팔고 나가면 해당 기업 주가엔 상당한 부담이 되고 주가의 변동성을 키울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박진석·박성우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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