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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잘린 발이 평화의 발이라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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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북한의 지뢰 도발로 부상한 장병들의 군인정신을 기리는 '평화의 발' 조형물 제막식이 12월 23일 파주시 임진각에서 열렸다. 휠체어를 탄 하재헌 중사와 김정원 중사(하 중사 오른쪽 뒤)가 당시 부대원들과 함께 조형물을 바라보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

이 곳에 육군이 설치한 ‘평화의 발’을 놓고 논쟁이 한창이다. 지난 8월4일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그리고 8월20일 포격 도발을 잊지 말자는 차원에서 육군이 최근 설치한 상징물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다.

육군은 지난 23일 효성그룹의 후원으로 군화를 신을 발을 형상화한 상징물(조각) 제막식을 했다. 육군 관계자는 “당시 부상으로 다리를 잃은 김재원, 하재헌 중사(진급예정)의 희생을 기리고,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북한의 도발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방문객들에게 전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상징물을 제작할 때 북한의 포격 도발 당시 응사했던 포탄의 뇌관 1개를 녹여 넣었다. 또 조각물 주변에는 비무장지대(DMZ)에서 흙을 실어다 뿌리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조각에 대해 2010년 천안함 폭침사건 당시 침몰했던 선체를 인양해 전시한 데 이어 북한의 도발을 상기시키는 또 하나의 상징물이 탄생했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군당국의 의도와 달리 비판적인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푸스올’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네티즌은 자신의 블로그(http://blog.naver.com/footsolution?Redirect=Log&logNo=220576858696)에 “(당시 부상을 당한)군인들의 안타까운 내용은 가슴 아프지만 개인적인 생각엔 이런 조형물은 시간이 흐른 후, 여러가지를 반영하여 심사숙고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어떨까 한다”며 “이 일(목함지뢰 도발)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바로 발 조형물을 만든다는 것은 좀…다음에 손을 다치면 손 조형물을 만들 것인가…”라고 했다.

제막식에 부상 당한 두 중사를 맨 앞에 앉힌 것도 부적절했다는 지적이다. 당시 두 다리를 잃은 하 중사는 29일 중앙보훈병원에서 치료를 마치고 의족을 달고 퇴원했다. 하 중사는 국군 수도병원으로 옮겨져 재활치료를 받을 예정이다.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군당국은 그를 파주까지 데려가 잘려진 발을 형상화한 조형물 제막식에 앉혔다. 이를 두고 너무 잔인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당시 행사에 참석했던 관계자는 “잘린 다리를 상징물로 만든 조각을 당사자가 보고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자신의 다리를 생각하지 않았겠느냐”며 “아직 치료중인 당사자를 앉힌 건 신중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상징물보다 군 의료체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종대 정의당 국방개혁추진단장은 “군의 성의없는 치료와 치료비 지원행태 논란를 겪은 군인과 그 가족에게는 큰 상처가 될 것”이라며 “저 동상만 보면 발을 잃고 관심 밖으로 밀려난 더 많은 장병에게 슬픔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비록 기업의 후원이긴 하지만 2억원이라는 돈으로 상징물보다 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게 산적해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군 의료체계 개선을 위해 할 일은 너무 많다”며 “의료비 지원에 대해선 규정을 따지면서 동상을 세우는 데는 발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은 군이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이라고 했다.

블루문(kickthebaby)이란 아이디를 사용하는 네티즌은 자신의 블로그(http://blog.naver.com/kickthebaby?Redirect=Log&logNo=220577830842)에 “상징물이 혐오스럽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지뢰 사건에 대해 대중의 논의가 있었고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였다면 저런 상징물을, 그 것도 임진각에 세우는 일은 없었을 것 같다. 휴전 상태에서 군사 분계선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 이름도 ‘평화의 발’이라니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온라인에선 토론방(대학토론)까지 만들어져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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