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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값’ 대신 공익 위해 뛰는 전 대법관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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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호 14면

1 이홍훈 전 대법관이 지난달 열린 공익재단 화우의 독거노인을 위한 봉사에 참여해 연탄을 직접 배달하고 있다. 2 김지형 전 대법관(사진 가운데 양복)과 이공현 전 헌법재판관(왼쪽)이 지난 4월 아름다운가게와 법무법인 지평 공동 행사에 참석해 봉사자들과 함께했다. 3 2013년 8월 집중호우로 수해를 입은 경기도 가평의 두밀리 마을에서 수해 복구 봉사 중인 목영준 전 헌법재판관. 4 지난 4월 열린 참여연대의 판결비평 모음집 출간 기념회에서 전수안 전 대법관(사진 오른쪽)이 이국운 한동대 법대 교수 사회로 좋은 판결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 개별 제공]

대한변호사협회는 이달 초 퇴직한 김진태 전 검찰총장에게 개업 자제를 부탁했다. 앞서 지난 3월에도 차한성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에 우려를 표명했다. 차 전 대법관은 현재 법무법인 태평양이 설립한 공익재단 ‘동천’의 이사장으로 공익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하창우 대한변협 회장은 “전직 대법관의 도장값이 3000만원”이라며 대법관의 전관예우를 비난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지 고위직 출신 변호사들의 공익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중앙SUNDAY는 봉사의 길을 택한 이홍훈·전수안·김지형 전 대법관과 목영준 전 헌법재판관을 만났다. 인터뷰는 21일부터 24일까지 직접 만나거나 전화와 e메일을 통해 진행했다. 이들에게 법조인의 공익활동과 방향을 들어봤다.

약자 돕는 ‘비정규직’ 역할 자청이홍훈 전 대법관은 2011년 정년퇴직을 앞두고 아내와 마주 앉았다. 고시생 남편의 뒷바라지를 시작으로 외벌이 월급으로 4남매와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돌봐온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고향인 전북 고창에서 노모를 모시고 후학 양성과 공익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당시 시행된 전관예우금지법(1년간 법원 관할지 개업 금지)을 핑계 삼아 오랜 꿈을 실현하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아내는 아쉬운 마음을 드러내면서도 결국 이 대법관의 마음을 받아줬다.


그렇게 이 대법관은 낙향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연금으로는 공익활동은커녕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에도 부족했다. 1년 뒤 그는 대형 로펌 화우의 고문변호사가 됐다. 대신 화우와 공익활동에 주력하기로 약속했다. 그때 화우 공익위원회가 출범했다. 이 전 대법관은 노숙인에 관심이 많다. 그는 공익 업무를 전담하고 있는 김준우 변호사와 함께 노숙인의 법적 문제를 해결해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이 전 대법관은 최근 청년 파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학자금 대출로 파산에 이른 젊은이들을 보면 4남매의 아버지로서 남 일 같지 않다.


그는 고(故)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인권변호사로 유명한 고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서울법대 재학 시절 민주화 운동을 했다. 그는 “우리 때는 민주화 투쟁에 참여한 인권변호사가 있었지만 지금은 다양한 분야에서 인생을 걸고 공익활동을 하는 젊은 변호사가 많다. 이들의 활동을 우리 사회가 연대해 아낌없이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 때문에 징역형을 사는 사회여서는 안 된다는 견해들이 다수 의견이 되는 대법원을 보게 될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으면서 떠납니다.”


소수 의견을 많이 내 이홍훈 전 대법관 등과 함께 ‘독수리 5형제’로 불린 전수안 전 대법관이 2012년 7월 퇴임식에서 한 말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처벌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 것이다. 그가 사법시험에 합격했을 때만 해도 동기 60명 중 여성은 혼자였다. 수많은 남성들과 경쟁해야 하는 35년간의 법관 생활 자체가 소수자로의 삶이었다. 그는 퇴임 후 선배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기로 했다. 변호사 등록을 하지 않고 공익활동에만 전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주체나 대상을 제한하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공익 목적의 일을 지원하고 보조하는 비정규직’이 된 것이다.


최근에는 소수자 모임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전 전 대법관은 “나같이 고리타분하고 제도권에 있던 사람의 지지와 연대가 우리 사회의 작은 변화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되리란 기대가 있다”고 했다. 그는 많은 변호사들이 공익활동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했다.


“사회가 진보한다는 전제하에 인권변호사의 역할이 소진할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지만 역사는 때로 예측할 수 없고 한 방향으로 진보하는 것도 아니어서 여전히 변호사의 존재와 역할은 중요하다.”


법조계에서 김지형 전 대법관은 노동법 전문으로 통한다. 대법관 인사청문회 때 노동법에 치우친 전문성을 문제 삼아 ‘만능법관’인 대법관에 적절하냐는 지적이 나왔을 정도다. 김 전 대법관은 2011년 퇴임하며 모교인 원광대 로스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3년 전 지평에 합류했다. 공익재단 ‘두루’가 탄생한 시점이다.


그는 두루를 만들 때 장애인 인권, 아동·청소년 교육, 사회적 기업에 대한 지원 등 기업 공익 분야, 이주노동자를 위한 국제인권 분야를 주제로 삼았다. 그는 장애인 시외이동권 보장 소송엔 직접 참여했다. 법무법인 지평과 태평양이 공조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지난 7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시외버스와 광역버스에 휠체어 승강 장비를 설치하라는 결정을 끌어냈다. 김 전 대법관은 “법조인이 잘할 수 있는 공익활동은 소송”이라며 “변호사의 공익활동이 특별하거나 다른 영역처럼 생각하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로펌과 변호사들의 공익활동이 이제는 치장용이나 홍보용이 아니라 진정성을 갖고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배드민턴 이용대 도핑 문제도 해결목영준 전 헌법재판관은 이제 김앤장 사회공헌위원회 위원장이란 호칭이 편하다고 한다. 그는 헌법재판관 시절부터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기본으로 모두가 차별 없이 혜택받을 수 있는 공익활동에 대해 고민해왔다. 기업 사건을 많이 하는 김앤장의 상황을 고려할 때 사회공헌위원회 출범 때부터 기준을 분명히 잡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개인적인 권리를 구제하는 소송은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약자 그룹 전체가 혜택을 받는 공익활동에 무게를 뒀다. 공헌위에서 처음 한 일은 국내 법령에 나온 장애인 차별적 용어를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상근 변호사들과 직원들이 법령과 규칙에 있는 차별적 용어를 검색해 개선을 제안했다. 국회와 법제처의 도움을 받아 장애자는 장애인, 정신병자는 정신질환자, 맹인은 시각장애인으로 바로잡았다.


지난해 1월에는 국제 배드민턴연맹이 도핑검사 절차 위반을 이유로 이용대·김기정 선수에게 자격정지 1년의 징계를 내린 사건을 맡았다. 김앤장의 막강한 전문 인력을 동원해 국제 스포츠중재법원에서 징계 취소 결정을 이끌어냈다. 자칫 국가 이미지가 실추될 뻔한 사건을 민간 로펌이 맡아 잘 해결한 셈이다. 목 전 재판관은 “이용대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우수한 자원과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공헌위가 사용하는 비용은 비밀이라고 했다. 대신 일반적인 재단이나 사단을 만들어 운영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김앤장 변호사들을 사회공헌위에서 활용하면 그 비용을 법인이 지불한다. 의무 공익활동 시간 외에는 타임차지를 지급하고 있어 상당한 비용이 공익활동에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오이석 기자 oh.i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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