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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속에서 찾은 희망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59호 27면

마음이 텅 빈 날은 저녁에 조그만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운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가, 번뇌와 망상은 환상인가 하는 생각의 엉킴을 무심히 바라본다. 투명이라는 말과 양심이라는 말을 좋아했지만 요즘은 내면의 거울이란 말을 좋아한다. 부족하고 어색한 글로 겨우 이어가는 나의 칼럼을 보신 독자들에게도 지난 을미년 한 해 건강하고 마음이 청정하셨느냐고 묻고 싶다.


지난해 어느 날 알 수 없는 전화 한 통이 왔다. “우리 회장님께서 정 선생님의 글을 보시고 꼭 한 번 만나 뵙고 싶어 합니다.” 며칠 후 그 회장님과 점심을 했다. 그리고 초겨울 비오는 인사동에서 조촐하게 열린 나의 목판화 전시장 입구에 화분을 살짝 놓고 가셨다. 열 살 차이의 인생 선배이신 그분은 겸양하고 편안한 큰 형님이셨다. 그 뒤로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마다 좋은 글을 한 편씩 SNS로 보내셨고 감사의 답신으로 수채화 그림 단상 등을 보냈다. 그런데 엊그제는 어쩐 일로 밤 11시 넘어 글을 보내셨다.


어떤 신부님이 성당에서 ‘죽음체험 명상’을 했다는 내용을 담은 글이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본 뒤 한 사람씩 관에 들어가면, ‘쾅’하고 관이 닫히고 열쇠를 채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빛도 공기도 없는 그 사각의 공간에 잠시 들어가 심장도, 마음도 멈춘 듯 10여 분을 있으면 “내가 그동안 뭐하고 살았는가”라고 반성하게 된다는 특이한 체험의 이야기를 보내신 것이다. 담담해하는 사람도, 답답해서 빨리 열어달라고 재촉하는 사람도 있단다.


그 글을 읽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다음날 아파트 경비실 주변에서 박스 몇 개를 구하고 주변 마트에서 몇 개를 더 얻어왔다. 테이프로 내가 들어갈 길이와 넓이를 재고 드디어 관(棺)을 완성했다. 빛이 전혀 스며들지 않게 검정 테이프로 붙이고 또 붙여 완성했다.


비록 일생에 집 한 채 짓지 못했지만 내가 죽을 때 들어갈 ‘종이상자 관’을 완성하니 감회가 새롭고 이마에 땀이 흘렀다. 만들면서 법정스님이 열반 후 평소 입던 가사장삼에 덮여 다비장으로 안치된 뒤 장작에 불을 붙이던 순간이 떠올랐다. “인연이 되어 에너지로 왔다. 그 에너지가 다시 인연 되어 흔적없이 사라지는구나” 하는 공허감이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내 나이도 겨울바람 속 무심히 서있는 호숫가 나목처럼 오십 후반에 접어들었다. 내가 만든 이 종이상자 관에 내가 들어갈 시간을 헤아릴 줄 어찌 생각이나 했을까. 밤이 깊어 그 관 속에 조용히 들어가 뚜껑을 닫았다. 어둠. 두 뼘 반의 좁은 이곳이 내 인생의 마지막 공간이었던가. 지금까지 살아온 나는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가. 숨을 거둘 때 썩고 흩어지면 다시 자연으로 변하는 것을 혼자 생각했다.


그날 밤 나는 내 삶의 가장 진솔한 면을 발견하였다.


옛 스님들의 말에 ‘백척간두 진일보’라 하여 더 이상 갈 수 없는 풀리지 않는 번뇌의 끝자락에서 한 발 나서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고 했다. 다시 말해 절망의 상태까지 도달해야 새로움을 만나게 된다는 뜻이었다. 이를 사자성어로 ‘絶處逢生(절처봉생)’이라고도 한다.


한 해가 어찌 지나간 줄 모르고 지나갔다. 끝자락이 되면 다시 새로움을 만나리라. 세상일도 그만큼 끝 모를 번뇌와 불편함 들이 있었을 것이다. 새해엔 병신년 말(馬)들이 희망을 안고 푸른 들판을 달려가듯 기쁨이 넘치는 일들이 다가오길 빈다.


정은광 교무dmsehf443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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