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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를 미는 바람을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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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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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탁
정치국제부문 차장

“50~60대 분들은 아우성입니다. 탈당하고 신당으로 옮기라고요.”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해 광주광역시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예비후보로 등록한 최경환 김대중(DJ) 평화센터 공보실장이 24일 전한 지역 민심이다. 하지만 젊은 층의 반응은 다르다고 한다. “얘기를 잘 안 하지만 탈당과 분열, 안철수 의원에 대한 실망이 교차해 젊은 층은 시큰둥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새정치연합을 탈당해 안 의원 측에 합류하는 광주 지역 의원이 속속 나오고 있지만 최 실장은 그래서 “광주 사람들은 지금 착잡하다”고 말했다.

 제1야당에 대한 지지를 유례없이 거둬들이고 있는 광주의 복잡한 속내와 달리 안 의원은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다. 탈당 후 창당에 나선 그가 가는 곳이면 취재진과 지지자가 몰려든다. 내분만 이어지던 야권에는 돌연 긴장감이 돌면서 문재인 대표가 의원들의 조기 선거대책위원회 구성 요구를 수용하는 상황이 됐다. 야권 지지자층의 관심이 살아나면서 문 대표와 안 의원의 지지율이 동반 상승하는 현상도 관찰된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30대 후반 직장여성은 “회사에선 안 의원이 왜 탈당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지만 난 정치에 흥미가 생겼다. 뭔가 바뀌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럼에도 ‘안철수 파도’를 휘몰아치는 모습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호남에서 안 의원의 지지율 상승은 ‘반(反)문재인 정서’가 주원인이다. 대선 패배 이후 보여준 문 대표의 능력과 리더십으로는 정권교체가 어렵다는 정서가 대체재인 안 의원에게 시선을 쏠리게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안 의원에 대한 광주의 열기도 과거와는 온도 차가 있다. 2002년 대선과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불었던 ‘노풍(노무현 바람)’이나 ‘안풍(안철수 바람)’에 비하면 강도가 약하다. 탈당 초기 새누리당 표를 잠식한 것으로 나오던 여론조사도 최근엔 새누리당은 큰 타격이 없고 새정치연합과 안철수 신당이 경쟁하는 구도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파도를 미는 바람에 주목해야 한다. 새로 일어난 안풍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일방적 리드에 끌려가는 국회와 선거 승리의 희망을 보여주지 못하는 야당의 무기력함에 대한 질타가 담겨 있다. 정부·여당에 협조할 것은 하고 얻어낼 것은 얻어내야 하는데 소득 없는 반대만 일삼는 야당을 지지할 수 없어 여당 지지나 무당층으로 빠졌던 이들도 이 바람에 편승해 있다. 안철수 개인보다 여야 모두가 지겨운 이들의 기대가 담긴 셈이다.

 바람이 만들어내는 파도는 변화무쌍하다. 대안을 찾기 시작한 야당 지지층의 마음도 고정돼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야권의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마당에 현역 의원 물갈이 요구가 높았던 광주에서 의원들이 탈당해 안 의원과 나란히 있는 모습은 머지않아 안 의원에게 부담이 될 것이다. 벌써부터 ‘도로 새정치연합’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문 대표 역시 새정치연합을 어떻게 추스르는지, 어떤 인재를 영입해 오는지를 놓고 평가를 받을 것이다. 새누리당이 어부지리를 얻을 것인지도 결국 이 바람의 향배에 달렸다.

김성탁 정치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