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사랑의 골든글러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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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는 사랑이 있다."

청각장애인 특수학교인 충주성심학교 야구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글러브'에 나오는 대사다. 글러브(glove)에서 g를 빼면 사랑(love)이 되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시즌이 끝난 뒤 야구팬들 사이에서 최고 화제는 기록이나 돈이 아닌 사랑이다. 야구 인기와 함께 선수들의 연봉이 높아졌지만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것엔 인색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몇 선수들이 기부에 앞장서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포지션별 최고 선수를 가리는 골든글러브처럼 본지 야구팀은 기부와 선행을 펼친 선수들을 '사랑의 글러브' 수상자로 선정했다. 투수는 올스타전처럼 선발·중간·마무리 등 3명, 야수는 지명타자를 포함해 9명을 뽑았다.

삼성 투수 장원삼(32)은 지난 2013년 FA(자유계약선수) 계약(4년 60억원)을 하자마자 모교 경성대를 찾아 1억원을 기부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뛰었던 초·중·고 야구부에 총 1억원을 전달했다. 2014년엔 5000만원을 더 냈고, 올해는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500만원을 기부했다. FA가 되기 전에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장원삼이 쌀을 보낸 사실이 한 팬에 의해 알려지기도 했다. 삼성의 불펜투수 차우찬(28)은 2013년 한 비영리 봉사단체에 5000만원을 기부한 적이 있다. 당시 연봉(1억3000만원)의 40%에 가까운 거액이었다.

한화는 '기부 올스타팀'이다. 김태균(33·1루수)은 2012년 사랑의 열매 대전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을 쾌척, 야구선수 최초로 아너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기부) 회원이 됐다. 2013년 말 한화로 이적한 2루수 정근우(33)는 동료 이용규(30)와 함께 사랑의 열매에 5000만원을 내놓았다. 정근우는 지난해 세월호 사고 때 김태균·이용규와 함께 각각 5000만원을 기부하면서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번호를 받았다. 이용규는 기부총액 1억원을 넘었지만 아내 유하나씨와 함께 내 아너 소사이어티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롯데로 이적한 마무리 손승락(33)은 '기부 끝판왕'이다. 손승락은 지난 7일 서울 서초구청에 1억원을 내고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 2011년부터 4년 동안 몽골·베트남·캄보디아·스리랑카 등 야구 후진국에 야구장비를 지원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1999년부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사랑의 골든글러브'를 수여하고 있다. 올해 수상자는 포수 강민호(30·롯데)다. 강민호가 기부한 2억원 덕분에 경남 양산에 '강민호 야구장'이 만들어졌다. 올해 강민호는 부산지역 폭우 피해 이재민을 위한 성금(3000만원)과 디딤씨앗통장 후원금(1000만원)도 희사했다.

지난달 NC에 입단한 박석민(30)은 FA 계약서에 기부 내용을 명시했다. 4년 총액 96억원 중 연 2억원씩 총 8억원을 어려운 환경의 어린이를 돕는데 쓰기로 한 것이다. 두산 유격수 김재호(30)는 연봉(올해 1억6700만원)에 비해 기부를 많이 하는 '착한 남자'다. 세월호 사고 때 1000만원을 냈고, 올해 생일 때 팬들로부터 받은 쌀화환을 보육시설에 기부했다.

KBO 사랑의 골든글러브 2회 수상자인 박용택(36·LG)은 2006년부터 안타나 도루를 할 때마다 적립급을 쌓는 '사랑의 수호천사' 기금을 구단과 함께 만들었다. 이대호(33·소프트뱅크)는 올해까지 10년 동안 연탄을 구입해 불우한 이웃들에게 직접 배달하는 봉사를 했다. 메이저리거 추신수(33·텍사스)는 아내 하원미 씨와 함께 지난해 1억원, 올해 1억1000만원을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기탁했다.

지도자 중에서는 류중일(52) 삼성 감독이 통 큰 기부를 했다. 류 감독은 2013년 말 계약금 6억원 중 2억원을 대구지역 중증장애아동 보호시설 다섯 곳에 보냈다. 올해도 충주성심학교 야구부를 위해 1000만원을 지원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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