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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위해 군남댐 물 가두자, 임진강 두루미가 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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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난 1월 9일 수심이 얕은 임진강 빙애여울에선 두루미와 재두루미 300여 마리가 월동 중이었다. [사진 연천지역사랑실천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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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접경한 민간인 통제선(민통선) 안에 위치한 경기도 연천군 중면 삼곶리. 이곳에는 원래 임진강이 만들어낸 장군여울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 17일 오전 11시쯤 찾아갔더니 얕은 물이 흐르던 여울은 물에 잠겨 호수로 변해 있었다. 이곳에서 1㎞쯤 하류에 있는 군남댐에 물을 채우는 담수 작업에 따른 여파다. 수심 5~30㎝ 물이 겨우내 흘러 두루미(천연기념물 202호)의 먹잇터이자 잠자리 구실을 하던 곳이었다. 여울이 사라지자 두루미도 보이지 않았다.

봄철 가뭄 대비해 모든 수문 닫아
월동지였던 여울 2곳 호수로 변해
환경단체 “1곳 만이라도 남겨둬야”
수자원공사 “물 부족해 담수 불가피”

 관찰대에서 망원경으로 강 건너편을 살펴보니 모형 두루미 3마리 옆에 두루미 3마리가 먹이를 먹고 있었다. 율무 등을 뿌려 놓은 대체 서식지다. 탐조객은 1시간 동안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여울에서 500m 떨어진 율무밭에서 두루미 6마리가 눈에 띄었다.

 장군여울에서 임진강을 거슬러 다시 1㎞ 상류에 있는 빙애여울도 마찬가지였다. 최대 월동지였던 여울은 사라지고 300여m 폭의 강은 호수로 변해 있었다. 이맘 때면 온종일 100∼300마리의 두루미와 재두루미(천연기념물 203호)가 머물던 곳이다.

 빙애여울에서 3㎞ 전방에 위치한 군 부대의 태풍전망대에 오르자 군사분계선(DMZ) 주변의 임진강 소규모 여울에 두루미 20여 마리가 몰려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현장에 동행한 이석우(57) 의정부·양주·동두천 환경운동연합 상임의장은 “임진강 여울 두 곳이 겨울철 담수로 인해 물에 잠기면서 두루미의 월동 안식처가 사라졌다”며 “육상에 설치한 대체 서식지 3곳도 제기능을 못하면서 두루미 개체수가 급감했다”고 말했다.

 사람이 먼저냐, 동물이 먼저냐. 임진강 군남댐이 올 겨울 들어 처음으로 전면 담수에 나서면서 두루미 보호 방법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광길(61) 임진강 평화습지원 관리소장은 “올 겨울 임진강 일대에 찾아온 두루미와 재두루미 개체수는 예년의 절반 정도인 200마리에 불과하다”며 “여울 두 곳이 모두 사라진 영향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지역 환경단체도 같은 의견이다. 현지 환경운동연합 측은 “담수량을 다소 줄여 빙애여울 한 곳만이라도 남겨 둬야 생태계 파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석우 의장은 “군남댐은 당초 홍수 조절 전용댐으로 조성한 만큼 본래 취지대로 연중 수문을 열어두는 게 맞다”고 말했다.

 앞서 한국수자원공사 임진강건설단은 지난 10월 15일부터 담수를 시작했다. 내년 5월 15일까지 계획 담수량(총담수량의 18%인 1300만t)에 해당하는 물을 채울 예정이다. 2012년 말부터 부분적으로 담수를 해오다 올해는 수문을 모두 닫고 계획 담수량을 처음 채웠다. 대신 하류의 하천 기능 유지를 위해 하루 40만t만 방류하고 있다.

 김재환 임진강건설단 운영팀장은 “겨울에는 북한 당국이 임진강 물의 3분의 2를 예성강 방면으로 돌리는 탓에 물 부족이 심각한 상태”라며 “겨울철 용수 공급과 봄철 가뭄에 대비해 담수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희대 윤무부(조류학) 명예교수는 “천적을 피해 여울에서 잠자고 먹이 활동을 하는 대표적인 습지동물이자 세계적 희귀조류인 두루미 보호를 위해 겨울을 지낸 뒤 3월부터 담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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