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된 성범죄자 3만, 몰카 미수도 20년간 신상 등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기사 이미지

생후 15개월 된 딸을 키우고 있는 회사원 조모(48·서울 마포구)씨는 최근 자택에 날아든 ‘성범죄자 고지 정보서’를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성범죄자들이 그의 ‘이웃’이 됐다는 고지서가 지난 8월부터 벌써 3통째 왔기 때문이다. 이번 고지서에는 “버스에서 여성을 성추행한 A씨(29)가 아파트 옆 동으로 이사 왔다”는 내용과 함께 A씨의 얼굴 정면 사진, 키, 몸무게 등 신상정보가 담겨 있었다. 그는 “공공장소 성추행범까지 고지 대상이 된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2013년 성폭력처벌특례법 개정
등록자 수 4년 새 9배나 급증
9583명 정보는 일반인에게 공개
법무부 신상정보관리센터도 출범

 경기도에 거주하는 회사원 B씨(31)는 2013년 한 대형마트에서 20대 여성의 치마 속을 휴대전화로 촬영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성폭력처벌특례법 위반으로 기소돼 최근 벌금 300만원과 함께 신상정보 등록 20년 선고가 확정됐다. B씨는 기소 당시엔 ‘미수에 그쳤으니 단순한 벌금형으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꼼짝없이 2035년까지 성범죄자 신상정보 관리 대상이 됐다.

 2013년 성폭력처벌특례법 개정으로 몰래 카메라(몰카) 범죄를 포함해 대상 성범죄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신상정보 등록자도 급증하고 있다. 이달 1일 기준 법무부에 등록된 성범죄자는 3만5466명이다. 2011년 4076명에 비해 9배로 늘었다.

 한번 신상정보 등록이 되면 거주지가 변경될 때마다 관할 경찰서에 신고해야 되고 수사기관이 필요에 따라 열람할 수 있다. 정보 공개·고지 결정이 함께 내려진 경우 여성가족부의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를 통해 일반인에게 신상정보가 공개된다. 현재 등록자 중 공개 대상은 9583명(26.8%)이다. 이 중 8287명은 19세 미만 자녀가 있는 지역 주민의 집에 우편 고지서를 발송해 거주 사실을 알려야 하는 대상이다. 이웃에게 신상이 공개된 성범죄자 일부는 주변의 시선을 피해 가족과 따로 거주하는 ‘이산가족 현상’도 생겼다고 한다. 서울고법 한 판사는 “성범죄자의 자녀들이 아버지와 함께 살기 싫다고 해 따로 사는 경우가 실제로 적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신상정보 등록자가 늘어난 데는 몰카 범죄가 많아진 영향도 크다. 지난 7일 검찰이 각각 징역 7년과 5년을 구형한 수도권 워터파크 몰카사건의 주범 강모(33)씨와 최모(26·여)씨도 20년 신상정보 등록 대상이다. 올해 신상정보 등록자 중 스마트폰·소형 카메라를 이용한 몰카 범죄자는 2013년 463명에 비해 6.4배 늘어난 2994명(8.4%)이다. 성폭행(44.6%), 강제추행(35.1%) 다음으로 많았다. 공중 밀집 장소 추행범도 2013년 113건에서 올해 1510명(5.2%)으로 13.3배나 늘었다.

 경기도에 사는 16살 C군은 지난해 2월 친구 2명과 평소 알고 지내던 14살 D양을 준강간한 혐의(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로 기소돼 올해 징역 3년과 신상정보 등록 선고를 받았다.

 올해 88세인 E씨는 2013년 12월 동네 문방구 앞에서 10살 여아에게 “연필을 사주겠다”고 접근해 몸을 만진 혐의(강제추행 등)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신상정보가 등록됐다. 미성년자(5.6%)와 60세 이상 고령자(7.4%)의 신상정보 등록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성범죄자 신상정보 등록·공개 제도는 2000년 아동·청소년 대상 범죄에 한해 처음 도입됐다. 이때는 관할 경찰서에 방문해야 인적사항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06년 6월 성폭력처벌특례법과 아동청소년성보호법 개정으로 신상정보의 인터넷 열람이 가능해졌다. 2011년 4월부터는 성인 대상 성범죄자까지 등록 범위가 확대됐다. 19세 미만 청소년 범죄자는 여성가족부가, 성인은 법무부가 데이터를 관리해 오다 2013년 6월 법무부로 등록·관리 주체가 통합됐다. 여성가족부는 법무부에서 정보를 넘겨받아 공개하는 업무만 한다.

 법무부는 폭증하는 신상정보 관리를 위해 ‘성범죄자 신상정보관리센터’를 17일 출범시켰다. 담당 부서를 과 단위에서 센터로 격상한 것이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