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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국 칼럼

3김 이후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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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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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대기자

김영삼 전 대통령을 보면 죽어야 산다는 말이 실감 난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호감도가 껑충 뛰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김 전 대통령의 호감도는 지난 3월 19%에서 지난달 말 무려 51%까지 상승했다.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에 대해서도 59%가 ‘우리나라 정치에 좋은 영향을 줬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산업화, 민주화 이뤘으나
분산과 타협과 공존의 정치
시대 요구에 제도 못 따라
분권형 개헌의 전제는
소수당 살리는 다당제

 돌아가신 분에게는 평가가 후한 게 인정이다. 야권 인사들은 주로 박근혜 대통령 탓으로 돌린다. 박 대통령이 과거 회귀 행태를 보여 민주화 지도자들이 더 돋보이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 임기 말 외환위기의 충격이 너무 컸다. 그 바람에 이전 업적들을 가려버렸다. 더군다나 야당에 정권을 넘겨주고 10년을 보냈다. 깎아내리기만 있었다. 이제야 하나회 척결이나 금융실명제는 그가 아니면 해내기 힘든 일이었고, 그것 없이는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 어려웠다고 인정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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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본적으로는 카리스마 시대에 대한 향수다. 3김 이후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다. 야당의 동의 없이는 법안 하나 처리 못한다. 그런데도 제왕 같은 역할을 기대하고 비교도 한다. 야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8일 관훈토론회에서 과거 지도자와 비교하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고만고만한 지도자들”이란 표현이 다시 나왔다. 은연중에 과거의 향수가 배어 있는 것이다.

 이제 시대가 변했다. 그런 카리스마는 필요하지도, 용납되지도 않게 됐다.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 시절이 있었다. 개발도상국이 압축해 산업화하려면, 권위주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이루려면 강력한 추진력 없이는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카리스마보다는 타협의 정치, 합의의 정치, 권력 분산의 정치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런 시대적 요구를 제도가 못 따라간다. 집권당에는 차세대 지도자들이 설 땅이 없다. 대통령은 5년 동안 뭔가를 마무리해야 한다. 권력을 나눠줄 여유가 없다. 줄을 세우고 영혼이 없는 정치를 요구한다. 독자적인 목소리는 배신으로 찍힌다. 이렇게 새로운 지도자를 키워내지 못하는 불임 체제는 두고두고 다음 세대에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

 야당은 그야말로 사분오열이다. 당을 장악할 강력한 리더십은 사라진 지 오래다. 비전도 꿈도 보여주지 못하는 올망졸망한 인물들이 차기를 노린다. 대표 수명은 하루살이다. 오직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려는 경쟁뿐이다. 타협이나 공존의 여지가 없다.

 87년 체제를 바꾸자는 논의는 그래서 시작됐다. 카리스마 시대의 유물이기 때문이다. 협치(協治)를 하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했다. 대통령은 모두 자기 임기를 지키려 한다. 임기 말이 되면 차기 후보들이 반대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새누리당 친박계인 홍문종 의원이 지난달 개헌론을 제기한 이후 야당에서는 개헌이 실제로 추진될 가능성을 높게 보는 사람이 많다. 일부에서는 영구집권 음모론으로 몰아간다. 한 전직 야당 의원의 말을 정리하면 이런 식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천에 적극 개입해 개헌선(재적 의원 3분의 2 의결)을 확보하려 한다. 야당 내에서도 찬성론자를 끌어들여 일본 자민당처럼 만들고 영구집권하려 한다. 이원집정부제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대통령으로, 실권 총리는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설 가능성이 크다’.

 대충 이런 시나리오다. 홍문종 의원 말 위에 의심과 의심을 얹어 소설 같은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딱히 음모라고 할 내용인지는 의문이다. 지역 할거 구도를 해소하지 않고는 현 체제가 오히려 야당이 집권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이 바람에 야당 내에 오히려 내각제 개헌을 선호하는 세력이 상당하다. 지역적 한계를 넘어설 여지가 생긴다고 보기 때문이다. 야당 내분의 바탕에도 지역 갈등이 깔려 있다. 굳이 음모라고 붙일 대목이라면 박 대통령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정도다.

 3김 정치의 가장 큰 그늘이 지역갈등 심화다. 개헌을 한다면 이것을 뛰어넘을 장치부터 마련해야 한다. 그동안 제시된 방법은 많다. 행정구역 개편은 지지부진하다. 중요한 건 선거제도다.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는 다당제가 전제돼야 한다. 대선거구제만 도입해도 가능하다. 권역별 정당비례대표제, 석패율제를 조합하면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 한 지붕 세 가족의 불편한 동거를 안 해도 된다. 내키지 않는 후보에게 표를 줘야 하는 연합공천도 사라진다. 지금의 소선거구제 양당 구도를 고집하는 한 개헌이 영구집권 음모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김진국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