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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보균 칼럼

‘총기 창궐’의 양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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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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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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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총의 나라다. 총은 미국을 상징한다. 총을 알아야 미국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총기 난사는 미국 사회의 어두움이다. LA 동쪽 샌버너디노 시의 총기 사건은 충격이다. 미국인들은 분노와 개탄을 쏟아낸다.

 뉴욕타임스(NYT)는 그 감정을 집약했다. 1면에 사설(12월 5일자)을 실었다. 제목은 ‘The Gun Epidemic’(총기 창궐)-. 사설은 “잔인한 속도로 효율적으로 죽이도록 고안된 무기의 합법적 구입은 도덕적으로 격분할 일이고 국가적 수치”라고 했다. NYT 사설의 파급력은 압도적이다.

미국 총기 난사, 왜 계속되나
로비보다 수정헌법 때문
총은 저항권의 상징,
자유와 테러의 이중성
정치문화에 역설적 작동
절제의 언어풍토 조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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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사회에서 총기 논란은 오래됐다. 총기 소유를 외치는 단체의 로비가 있다. 전국 총기협회(NRA, National Rifle Association)의 기세는 위압적이다. 총기 생산·판매 업체의 입김도 세다. 그 때문에 총기 규제는 어렵다. 하지만 그 이유는 제한적이다.

 미국에서 총의 존재감은 독특하다. 국가는 폭력을 독점한다. 총은 공권력의 도구다. 미국은 그 도구를 개인에게 나눠줬다. 그것도 헌법으로 보장했다. 이렇게 규정한다.(수정헌법 2조) “무장이 잘된 규율 있는 민병대는 자유로운 나라의 안보에 필요하다. 무기를 소유하고 휴대할 수 있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돼서는 안 된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민주정치의 장래를 걱정했다. 불안감은 17세기 영국의 크롬웰 같은 독재자의 등장이다. 그 대응 장치가 수정헌법 2조다. 전제(專制)정권이 출현하면 총을 들라는 것이다. 총은 저항의 수단이다. 수정헌법은 시민권 보호 조항이다. 1조는 언론·집회 자유다.

 NRA 본부는 워싱턴 아래 버지니아(페어팩스 카운티)에 있다. 건물 안에 NRA 총기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에 총기 3000여 정이 전시돼 있다. 서부 개척시대 권총, 명사수 애니 오클리의 윈체스터 소총, 나이 든 한국인에게 익숙한 M-1, 21세기 소총까지 무수하다. 총으로 도배했다는 느낌이다. NRA 회장이었던 찰턴 헤스턴의 동상이 있다. 영화 ‘벤허’의 주인공은 총의 수호자다. 전직 대통령 아이젠하워·존슨·레이건이 소유했던 총도 진열돼 있다.

 1981년 레이건은 저격당했다. 하지만 그는 총기규제에 나서지 않았다. 그는 NRA를 격려했다. “공포와 위해(危害)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지키려는 우리 시민들을 무장 해제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수 미국인에게 총은 방어도구다.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최후 수단이다. 미국의 총은 이중적이다. 헌법과 개인 자유, 테러와 대량 학살의 양면성을 갖는다. 총은 미국 역사와 문화, 시민의식과 함께 존재한다.

 총기 난사는 미국 사회를 절망에 젖게 한다. 총에 대한 거부감은 커진다. 법적 제동장치가 이어진다. 하지만 근본적 변화는 없다. 연방대법원의 판단이 바뀌지 않아서다. 총기 소유 권리의 금지는 위헌이다. 판매와 휴대 때만 규제가 따르는 정도다. 총기 판매량은 줄지 않는다. 버락 오바마의 민주당 정권에서도 마찬가지다.

 NYT의 1면 사설 게재는 95년 만이다. 1920년 워런 하딩이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뽑혔다. NYT는 사설로 비판했다. 하딩의 역량은 형편없다. 하지만 하딩은 압도적으로 당선됐다. 선거 사상 최다 득표기록을 세웠다. 나는 오하이오 주의 작은 도시 매리언(Marion)에 갔었다. 하딩의 고향이다. 그곳에 하딩 기념관이 있다. 이런 표현의 전시물이 있다. “하딩은 선거에서 압승했다. 그는 NYT 등 언론의 오만을 꺾었다.”

 미국 민주주의는 총과 공존한다. 총의 사회는 절제를 요구한다. 상대방을 자극하면 총이 등장한다. 미국 역사에 그런 장면이 있다. 재무장관(초대) 알렉산더 해밀턴과 부통령(3대) 애런 버의 결투(duel)다. 해밀턴은 “위험한 인간”이라고 버를 비난했다. 버는 결투를 신청한다. 그들은 총을 들었다. 해밀턴은 버의 총을 맞고 숨졌다. 해밀턴은 10달러 지폐의 얼굴이다.

그 후 결투는 불법이 됐다. 그것은 정치적 교훈이다. 언어는 정치다. 절제와 격조, 명예존중은 선진 정치의 바탕이다. 총은 미국정치의 역설로 작동한다. 미국의 법치는 엄격하다. 시위 현장의 폴리스 라인은 엄격하다. 그걸 넘으면 체포된다. 누구나 총을 가질 수 있다. 그런 사회의 경찰력 발동은 즉각적이다.

 한국 사회 전통은 숭문(崇文)이다. 그 관점에선 미국의 총기 문화가 실감 나지 않는다. 한국 정치의 언어는 거칠다. 언어폭력은 위험수위를 넘는다. 한국 정치문화는 급속히 황폐화됐다. 한국 사회의 폭력 시위는 험악하다. 쇠 파이프, 밧줄로 버스 끌기는 섬뜩하다. 공권력은 조롱의 대상이다. 그 장면은 미국에서 상상할 수 없다.

 민주주의 작동 요소는 다양하다. 나라마다 미묘한 특색을 갖는다. 기본 원리는 같다. 그것은 자기 억제와 상대방 배려다. 한국 정치는 민주주의를 쇠락시키고 있다. 민주주의 환경의 재구성이 절실하다.

박보균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