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LG-삼성, 이번엔 디스플레이 ‘색깔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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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B와 RGBW 비교 [자료: LG·삼성전자]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 1·2위를 다투고 있는 LG와 삼성이 이번에는 ‘색깔 전쟁’을 벌인다. 하얀색 픽셀을 디스플레이의 색상을 구현하는 유효화소로 보느냐를 두고서다.

하얀색(W) 픽셀은 해상도를 결정하는 유효화소인가?
중국 추격 코앞인데, ‘소모적 논쟁’ 비판도

9일 디스플레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 사업부는 최근 세계정보디스플레이학회(SID) 산하 디스플레이계측국제위원회(ICDM)에 해상도 측정 방식을 강화해야한다고 제안했다. 빛의 3원색인 빨간색(R)·녹색(G)·파란색(B) 픽셀만을 디스플레이의 해상도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삼자는 게 삼성 측의 주장이다.

삼성은 이 3개 픽셀을 이용한 RGB 방식 패널을 적용해 고화질(UHD) TV를 만들고 있다. RGB가 모두 켜지면 하얀색이 된다. 반면 LG는 RGB에 별도의 하얀색(W) 픽셀을 추가한 RGBW 방식 패널을 적용한 제품을 선보였다. 만약 ICDM에서 삼성의 주장을 받아들여 W를 유효화소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LG는 앞으로 주요 제품에 UHD를 표기하지 못할 수도 있다.

논쟁의 시작은 LG디스플레이가 지난해 RGBW 방식을 채택한 ‘M+’ 패널을 내놓으면서부터다. UHD는 좁은 면적에 화소를 촘촘해 배열하기 때문에 RGB만 사용하면 밝기가 약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에 LG는 W를 추가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또 하얀색 화면을 낼 때에는 빛의 3원색인 RGB가 모두 켜져야하기 때문에 많은 전력이 소모되는데, W픽셀은 빛을 그대로 통과시켜 전력 소모를 30% 가량 줄였다. LG전자가 자사의 TV모델에 이를 채택하고, 중국의 주요 TV업체들도 M+를 탑재한 모델을 내놓으면서 LG는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삼성에서는 W가 하나의 색이 아니라 단순히 밝기를 키우는 역할만 하기 때문에 유효화소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일반적으로 UHD는 3840X2160의 해상도를 갖춘 제품으로, 패널 가로에 4000개에 가까운 픽셀이 들어간다고 해서 ‘4K’로 불린다. 삼성 측의 주장을 따르면 RGBW는 화소가 RGB보다 4분의 1 부족한 만큼 4K가 아닌 ‘3K’(2880x2160)로 불러야한다. 삼성 관계자는 “LG의 RGBW 기술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다만 실제로는 3K의 해상도인데, 4K의 해상도를 낸다고 소비자를 현혹하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LG에서는 W가 영상을 디테일하게 표현하는데 역할을하기 때문에 4K로 보는 게 맞다고 반박한다. 기존 RGB 방식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디스플레이 기술을 업그레이드한 것으로, 해외 디스플레이 업체에서도 LG의 방식을 따르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LG 관계자는 “삼성의 일부 스마트폰·노트북 등의 디스플레이에서 RGBW 기술과 유사한 방식을 사용했다”며 “삼성의 기준을 따르자면 이 제품들 역시 삼성이 홍보한 해상도 수준보다 떨어지는 자가당착에 빠지는 꼴”이라고 주장했다.

아직까지 UHD 해상도에 대한 기준은 주요 기관마다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전미가전협회(CTA)와 디지털유럽(DE) 등은 ‘해상도를 구성하는 화소는 RGB만으로 구성돼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반면 시장조사업체 IHS나 미국의 UL, 독일 TUV, 영국 인터텍 같은 인·검증기관은 RGBW 방식을 4K로 인정하고 있다. SID는 내년 상반기 회원사 투표를 통해 기준 변경 여부를 결정하고 명확한 기준을 정립할 예정이다. SID가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삼성·LG의 향후 TV·패널사업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제 살 깎아먹기식’ 논쟁이라는 따가운 비판이 나온다. 중국 업체들이 코앞까지 추격해온 상황에서 양사의 소모적인 ‘힘겨루기’가 한국의 디스플레이 산업 경쟁력만 갉아먹는다는 것이다.

IHS에 따르면 평판 디스플레이 패널 시장에서 삼성·LG의 점유율 합계는 2010년 46%에서 2018년 37%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됐다. 반대로 중국 양대 업체인 BOE와 차이나스타의 점유율 합계는 2010년까지는 통계에도 잡히지 않을 정도로 미미했지만 2018년에는 21%까지 치고 올라갈 것으로 점쳐졌다. 업계에선 한국의 수출 효자 제품으로 꼽히는 액정표시장치(LCD)에서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1년 정도로 줄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디스플레이 기업 상무급 임원은 “갈수록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이런 이전투구식 갈등은 한국 기업이 가져갈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며 “양사가 함께 한국 산업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국제 표준을 주도해나가는 것이 옳은 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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