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벽에 부닥쳐 경수로 중단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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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한 핵 문제가 장기화하면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대북 경수로 지원 사업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올 9월로 예정된 경수로 주요 부품 반입을 위해선 KEDO와 북한이 손해배상의정서를 맺어야 하지만 북핵에 따른 교착 국면으로 그 전에 체결될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다.

이 의정서는 공사 중 사고에 대해 북한이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골자로, 경수로 참가 업체는 이 의정서가 체결되지 않으면 납품이 어렵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약 3분1의 공정을 보인 사업이 북핵이라는 벽에 부닥쳐 중단 위기에 몰린 것이다.

특히 미국은 강경하다. 북한의 새 핵개발 계획 시인과 핵 재처리 완료 표명으로 제네바 합의가 사문화한 마당에 경수로 공사를 계속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 12~13일의 한.미.일 실무협의회에서 8월말 공사를 중지해야 한다는 의사를 밝혔고, 28일 방한하는 찰스 카트먼 KEDO 사무차장도 같은 뜻을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경수로 사업비를 거의 부담해온 우리 정부는 고민에 빠졌다. 미국 입장에 일정 부분 공감하면서도 경수로 공사 중지가 가져올 파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공사가 중단되면 북한의 반발로 북핵 문제는 더 꼬일 것이 뻔하다. 게다가 우리가 집행한 8억7천만달러의 비용도 날려야 하고, 부품을 제조 중인 하도급 업체에 위약금까지 물어야 한다.

3억여달러를 집행한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한.일 양국은 공사 중단에는 신중한 태도다. 대신에 양국은 공사 진행 속도를 조절해 부품 공급 일정을 늦추거나 토목공사 등을 별도로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북한이 미국이 바라는 5자 회담(남북, 미.일.중)에 나올 경우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북한은 경수로 공사 계속 여부가 판가름날 8월까지 5자 회담에 응할지를 결정할 전망이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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