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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온 양아들 ‘토니 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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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6호 31면

토니 오(왼쪽)와 천추샤.

1989년 막내 딸을 낳은 후로 주위 사람들은 내게 양아들을 하나 얻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한국에도 이러한 ‘양자 풍습’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중화권에서는 제법 보편적인 일이다. 물론 혈연관계는 없고 친자식처럼 가까운 사이를 일컫는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양자가 행운을 가져올 것이라고 바라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아들 혹은 자녀가 없는) 부족함을 메워줄 것이라 믿기도 한다.


내가 딸만 셋이어서 그런지 친척과 친구들은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이 상당하다. 수고를 마다하고 나와 잘 맞는 아이를 찾아주겠다고 나서거나 심지어 자기 아들을 추천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정작 나는 이 같은 호의에 대해 줄곧 완곡한 거절을 표해왔다. 첫째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니와 둘째는 나 스스로 부담을 짊어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같이 뭐든지 필요 이상으로 열심히 하는 성격에 정말 양아들이라도 생긴다면 진짜 모자관계처럼 굴 게 뻔했다. 인연이 닿지 않는다면 조급하게 마음 쓸 필요도 없다고 여겼다.


지난해 5월 토니 오(오효동)의 등장은 이 같은 국면을 한 순간에 바꿔놓았다. 인연이 그를 우리 집으로 데려온 것이다. 통상 양모와 양자의 관계를 맺을 땐 간단한 의식이 필요하다. 우리는 서울에서 토니의 부모를 증인으로 세우고 선물을 주고 받으며 기념식을 했다. 나는 그날 토니에게 ‘아자이(阿仔)’란 애칭을 붙여줬다. 광둥어(廣東語)로 아이란 뜻이다. 그 후 우리 집에선 나이를 막론하고 모두 그를 ‘아자이’라고 불렀다. 엄마가 홍콩사람이니 홍콩식 아명을 부르다 보면 더욱 친밀해지겠지.


그리고 한국인은 비교적 쉽게 광둥어를 배울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광둥어와 한국어의 고대 음가가 비슷한 덕분이다. 사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푸퉁화(普通話·북경어)는 북방 언어가 외족의 영향을 받아 발전한 형태로 고대 언어와는 차이가 있다.활력이 넘치는 토니는 어딜 가나 환영받을 만한 아이다. 지난 연말 토니는 말레이시아로 와서 처음으로 라이언팍슨 파운데이션 주최 자선행사에 참여했다. 그가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을 눈치챈 사람들은 함께 사진을 찍자고 요청하는 등 K팝 스타를 방불케 하는 분위기가 연출됐다. 비록 가짜 K팝 스타긴 했지만 직접 경품 추첨에 나서며 분위기를 띄우고 대가는 한푼도 받지 않았으니 주최 측으로선 고마울 따름이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딸 비비안은 기지를 발휘해 아예 토니를 입사시키자고 제안했다. 그녀가 일하고 있는 브랜드 부문에선 나날이 교류가 확대되고 있는 한국 기업들과 합작 프로젝트를 진행할 사람이 필요할 뿐더러 토니가 중국어를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기도 했다. 마침 이직을 고민하고 있던 그는 흔쾌히 제안에 응하며 말레이시아로 건너왔다.


얼마 전 한국 남성복 브랜드 ‘더 클래스’가 정식으로 말레이시아에 진출하면서 토니는 첫 번째 임무를 맡게 됐다. 광고모델인 씨엔블루의 홍보 활동을 총괄하는 역할이었다. 토니와 비비안 남매는 짝을 이뤄 공항 마중에서부터 호텔 예약, 사인회 일정 조율까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행사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자 밤낮으로 고생하며 세부사항을 챙겼다. 마치 특수부대 훈련을 방불케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무척 뿌듯했다.


첫 업무를 성공리에 마친 그들은 이제 오는 11일 슈퍼주니어와 함께하는 이랜드 그룹의 SPA 브랜드 ‘스파오’의 라이언팍슨 백화점 입점 행사를 준비하는 데 여념이 없다. 이번 역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나는 농담처럼 두 사람이 한류스타를 전문적으로 돕는 홍보회사를 설립하는 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잘되면 다국적 서비스로 확대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아마 그건 너무 앞서나간 바람일 테다.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헛된 꿈일 수도 있고.


하지만 그들은 아직 젊지 않은가.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마땅한 시기다. 물론 나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꿈쟁이긴 하지만 말이다.


천추샤(陳秋霞·진추하)라이언팍슨 파운데이션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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