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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영화] 소녀, 어른되다 TTL CF스타 임은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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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탕도 뚝딱뚝딱 비우고, 보약도 지어 먹어야죠."

임은경(20)은 먹는 얘기부터 꺼냈다. 연기력은 밥 힘이라는 것. 그럴 만도 하다. 1m64㎝에 41㎏. 지난해보다 2㎏ 늘었으나 여전히 '발육 부진'이요 '체중 미달'이다(그의 말 그대로다). 그렇다. 그에겐 체력 보강이 발등에 불이다.

앞으로 넉달간 지옥 행군을 견뎌야 한다. 푹푹 찌는 살인 더위도 코앞에 다가왔는데…. 임은경은 '과욕'을 부렸다. 영화 '벼락 아파트'와 드라마 '보디 가드'를 동시에 찍어야 할 판이다. 소위 겹치기 출연. "일정상 불가피했다"는 해명이다.

쪽대본을 받고 발을 동동 구르다가(드라마), 호흡을 다듬고 감독의 지시(영화)를 따라야 한다. 게다가 드라마는 처음. 화면은 작지만 수백만명이 주시하는 드라마다. 순발력(드라마)과 지구력(영화)이 함께 요구되는 고된 여행에 나섰다.

*** 신비소녀여 안녕!

지난해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개봉 직전, 그를 만난 적이 있다. 궁금한 걸 물어도 대답은 극히 짧았다. 또 전신에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를 띄운 'TTL 소녀'의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짙게 깔려 있었다.

그런데 웬걸? 1년 만에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구면인 덕도 있겠으나 연신 생글생글 웃는다. 말수도 부쩍 늘었다. 성격 개조라도 했나. 민소매.청바지 차림에 스튜디오 바닥에 누워 사진을 찍을 땐 성숙한 여인의 향기도 난다. TTL 소녀의 섹시 걸 변신, 성냥팔이 소녀의 야한 재림?

"그때만 해도 신비주의 전략을 썼어요. 광고 이미지를 차용했던 영화잖아요. 원래 내성적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나요. 달라져야죠. 무엇보다 말이 많아졌어요. 전 같으면 한마디로 끝낼 걸 이젠 두세마디씩 하죠. 그리고 인터넷 게시판에서 유머를 즐겨 찾아요. 기분이 가벼워지거든요. 또 다른 사람과 많이 어울리려고 노력해요."

"억지스럽지 않나요."

"아니요. 관객과 거리감을 줄여야 해요. 친숙한 연기자로 남고 싶거든요."

*** 철부지 아가씨로!

임은경의 고민은 한가지다. CF 하나로 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은 '벼락 스타'가 됐으나 그것도 벌써 3~4년 전의 일. 이른바 '약발'이 떨어졌다. 지난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품행제로'에 잇따라 출연한 것도 변화한 자신을 알리려는 시도였다. CF 스타가 아닌 배우 임은경의 출발을!

그래도 숙제는 있다. 아직 어른들은 그를 잘 모른다. 세상사를 초월한 듯한 그의 신비한-물론 광고가 조작한 것이다- 이미지에 신세대는 열광했으나 그의 생김새를 기억하는 기성세대는 많지 않다. 특히 이번엔 안방극장까지 침투하지 않는가.

그는 한마디로 "어른에게 사랑받고 싶다"고 말했다.

승부수는 다음달 촬영에 들어가는 풍속 코미디 '벼락 아파트'(감독 이기호)다. 세번째 영화 만에 1인 주연(원 톱)을 맡았다. 성격도 1백80도 달라진다. 대구에서 상경한 재수생 아가씨 강희다. 이모집에 얹혀 살면서도 자기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하는 집요한 캐릭터다. 또 충동이 강한 천방지축형이다. 아파트에서 오물(?)을 버린 범인을 찾아내려고 이웃집을 쑤시고 다닌다.

오는 5일 시작하는 KBS 주말극 '보디 가드'에선 감자탕집에서 아르 바이트하는 나영으로 나온다. 극중 나이도 실제와 똑같은 스무살. 험한 세상을 당차게 살아간다. 게다가 출생의 비밀도 있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이른 나이에 엄마를 잃은 슬픔도 간직하고 있다.

*** 배우만 된다면…

임은경에게 연기는 고통이자 희망이다. 별다른 준비없이 연예계에 들어온 그에게 배역의 심리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그는 "기분이 꿀꿀하다가도 촬영장에 오면 마음이 풀린다"고 말했다. 카메라 앞에 서면 "내게 이런 면이 있었나 하고 놀라며 킥킥 웃는다"고 덧붙였다.

"작품 하나하나가 교과서라고 생각해요. 경험만큼 좋은 선생님이 없겠죠. 차곡차곡 부족한 걸 채워나갈 거예요."

"뭐가 부족한데요."

"맞받아치는 기량이 달려요. 상대방 반응에 따라 저를 조절하는 능력이 부족한 거죠. 짧은 순간에 감정을 올리고 내리는 연기, 즉 감정 기복이 심한 연기도 부담스럽죠."

임은경은 이번에 마음먹고 춤을 배웠다. 발랄.쾌활한 요즘 젊은이의 '필수품'인 댄스에 도전한 것. 본인은 땀을 흘리며 따라했으나 워낙 체구가 마른 탓인지 주위에서 '뼈다귀 같다''나무인형 같다'고 놀려 속상했단다. 아니, 이런 극비 사항을 털어놓다니? 그만큼 여유를 찾았다는 증거일 게다.

그는 다음달 개설될 본인 홈페이지(주소 미정)에서 VJ로도 나선다. 자기 일과를 들려주고, 노래도 틀어준다.

"라디오 DJ도 하고 싶나보죠."

"언젠가, 잘 할 수 있다면요."

"정말 욕심쟁이군."

"아니요. 많은 사람과 만나고 싶을 뿐이에요."

박정호 기자

권혁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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