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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더이상 테러안전지대 아냐"…"체계적 대응 위해선 테러방지법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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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방지법이 제정이 되지 않으면 IS 가담하려 해도 가담 차단만 했지 손 쓸 방법이 없습니다. 일종의 시한폭탄 같은 것을 안고 사는 셈이다.” (국정원 관계자)

“마크 리퍼트 미국대사 피습 사건을 분석해보면 지금도 접근을 막을 방법이 없다. 외로운 늑대형 테러에 너무 취약하다.” (경찰 관계자)

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테러 전문가들이 ‘테러방지법 제정,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를 주제로 긴급 좌담회를 열었다. 이날 좌담회에는 자유민주연구원 유동열 원장의 사회로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 임종인 대통령 안보특보, 이만종 한국테러학회장,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 교수 등 전문가와 국정원ㆍ경찰ㆍ기무사에서 대(對)테러업무를 전담하는 실무자 등 총 13명이 참석했다.

좌담회에 참석한 전문가와 실무자들은 국내의 테러 위협에 대해서 ‘위험한 수준’이라고 입을 모았다. IS는 지난 9월 한국을 포함해 대테러 활동에 참여하는 62개국을 ‘십자군 동맹국’이라 칭하며 “이들 국가의 시민들을 살해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국정원 대테러업무 관계자는 “강남역 같이 일반 시민들이 다수 모이는 장소에 대한 테러 대비가 부실한데, 이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제대로 안 돼 있다”고 말했다. 김용석 전 청와대 안보실장도 “북한이 변종 IS 국내 외로운 늑대 이런 사람들 사주 또는 포섭해 할 가능성 굉장히 많다”라며 “일반 군중이 다수 모인 장소와 시설을 공격하는 것은 아주 간단한 만큼 예방이 중요한 상태”라고 했다.

이날 좌담회에 모인 전문가들은 테러방지법 통과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국회 정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는 ^국가 대테러 활동과 피해보전 등에 관한 기본법(송영근 의원 대표발의)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이병석 의원 대표발의) ^테러예방 및 대응에 관한 법(이노근 의원 대표발의) 등 3개 법안이 올라가 있다.

임종인 대통령 안보 특보는 “지금은 관계법령이 없어 사전 예방적 정보를 수집하는 데 한계가 있고 각 기관이 수집한 정보를 공유하기도 어렵다”며 “테러방지법 등을 제정해 체계적 시스템과 역량을 갖춰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석 군사문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현행 테러 대책은 법이 아닌 대통령 훈령에 기반을 두어 공무원과 행정기관 외에 민간에는 효력을 미치지 못 하는 만큼 체계적 대응을 위해서는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제정호 교수는 “테러방지법은 인간의 안보와 안전을 증진한다는 점에서 이해해야 한다”라며 “테러 자체가 자유와 생명, 재산을 박탈하는 중요한 인권 침해인 만큼 작은 인권을 제한해 많은 인권을 보장하는 측면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31개국이 테러방지법을 시행 중인데, 이 같은 법이 아직 없는 한국은 테러 후진국이라 볼 수 있다”라며 “인간의 생명과 자유를 침해하는 테러를 막는 것은 중요한 행정과제인데 이것을 법 밖의 훈령으로 처리하는 것은 법치주의 원칙에도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날 좌담회에서는 국정원의 권한과 인권침해 요소 등과 테러방지법의 우려 사항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임종인 대통령 안보특보는 “대테러센터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예방적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정보를 요청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라며 “이 과정에서 생기는 우려를 막기 위해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들어 모든 활동을 사후적으로 감시해 오남용을 막게 하는 등의 견제 기능을 활성화 하는 것이 방법”고 말했다.

신상엽 전 국정원 대테러국장은 “해외정보활동과 달리 국내정보활동은 근거 법령이 반드시 필요하다”라며 “독일은 내국인과 관련된 정보활동을 할 때 해야되는 일과 방법론까지 정해놨는데, 이런 방법을 정해놓은 것은 국정원의 권한 강화가 아니라 합법적 통제와 투명성을 강화하는 길이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 간사인 이철우 의원은 “한국이 테러 안전지대가 아닌 것은 전문가들이 다 아는 만큼, 테러방지법 제정은 시급한 과제”라고 전제했다. 이 의원은 “프랑스도 테러 관련해서 법을 강화했지만 결국 테러가 발생한 만큼 테러에 대한 인식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야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테러방지법을 합의 처리를 하기로 한 후 현재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여야는 2일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해당 법안에 대한 이견을 줄인 상태라고 한다. 야당은 그동안 인권침해 요소와 국정원의 비대화 등을 이유로 테러방지법에 반대해왔다.

이석우 의원은 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테러방지법에 대한 이견은 거의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국정원장이 테러 관련 컨트롤타워인 가칭 ‘국가테러위원회’의 상임위원장을 맡도록 한 내용을 삭제하고, 유엔에서 테러단체로 지정한 29개 단체만 테러단체로 보기로 하는 등의 합의 내용을 소개했다. 이종걸 새정치 민주연합 원내대표는 3일 국회에서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새누리당의 입장을 먼저 듣고,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대테러방지시스템으로서 우리 당 방식의 대테러방지법을 내놓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테러방지법은 2001년 11월, 9ㆍ11 테러 직후 발의됐지만 14년 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안효성, 김다혜 대학생 인턴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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