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3’의 싱크탱크 … 아시아 경제공동체 설립도 제안했죠
1차 EAVG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제안
EAVG를 이해 하려면 먼저 ‘아세안+3’부터 알아야 합니다. 이는 ‘아세안 10개국’(말레이시아·태국·싱가포르·인도네시아·필리핀·베트남·브루나이·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과 ‘한·중·일’이 모인 지역 협력체입니다.
이들이 뭉친 동기가 있어요. 지난 1998년은 아시아 전체가 ‘외환 위기’로 몸살을 앓던 때입니다. 동남아·동북아 전체에서 통화가치가 곤두박질치고 외환이 빠져나가는 공동의 위기가 닥친 거지요. 그래서 이들 나라는 깨닫기 시작합니다. ‘뭉쳐야 산다’는 걸요. 당시 ‘아세안+3’라는 공동체를 결성한 배경입니다. 특히 이들은 ‘동아시아’라는 정체성을 내세우고 정치·경제·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서로 돕고 살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EAVG는 ‘아세안+3’의 ‘싱크탱크’로 보면 됩니다. 회원국들이 뭉쳐서 이익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약속과 계획을 잘 얼마나 지키는지 평가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일도 합니다. EAVG는 특히 한국과 인연이 깊어요. 1차 EAVG는 1998년 ‘아세안+3’ 정상회의 때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제안으로 탄생했습니다. 13개 회원국이 각각 유명한 학자나 정치인 출신 인사들을 뽑아 기구를 꾸렸지요. 한승주 전 외무장관이나 이경태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등도 창립 멤버로 참여했습니다.
외환위기·글로벌금융위기가 계기
1차 EAVG는 ‘아세안+3’가 자리잡는 데 많은 공을 세웠습니다. ‘평화(Peace)·번영(Prosperity)·발전(Progress)’ 등 3P를 추구하는 비전 아래 경제와 금융은 물론 정치·안보, 환경·에너지, 사회·문화·교육, 제도 등 6개 분야 협력 방안을 제시했지요.
특히 ‘동아시아 차원의 금융기구를 설립하자’는 논의가 대표적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얘기는 2000년 태국 치앙마이에서 열린 ‘아세안+3’ 재무장관 회의에서 나왔어요. 다시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기관에만 기대지 말고 아시아 국가들이 안전한 방법으로 돈을 빌려주는 제도를 만들자는 구상이었습니다. 그렇게 나온 ‘치앙마이 협정’으로 ‘아세안+3’은 2011년 싱가포르에 지역 금융시장의 건전성을 평가·분석하는 거시경제조사기구(AMRO)를 세우기도 했죠. 같은 해엔 아시아 국가들의 돈을 지역에 투자하기 위해 신용보증투자기구(CGIF)도 생겼어요. 역내 통화로 발행하는 채권에 대해 신용 보증을 서줘 이자를 낮추는 역할을 했습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굵직한 도전들은 동아시아 국가들을 다시 한번 불러 모았어요. 수출 중심으로 해외 시장에 의존하던 동아시아 국가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휘청거렸습니다. 또 2010년 일본의 대지진 참사와 2011년 태국·캄보디아의 홍수 등을 보며 다시 ‘뭉칠’ 필요성을 실감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그런 상황에서 ‘제2차 동아시아 비전그룹(EAVG II)’을 제안했습니다. 회원국들도 반겼습니다.
역내 무역 활성화, 금융 안정성 초점
4번의 회의를 거친 2차 EVAG는 2012년에 “오는 2020년까지 동아시아 경제공동체를 설립하자”는 제안을 합니다. 이에 따른 대표적 결과물이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내년 타결 예정)입니다. ‘아세안+3’와 호주 등 16개국이 관세를 낮추고 경제 제도를 공유해 매력적인 투자지로 거듭 나자는 구상입니다. RCEP 협상이 체결되면 인구 34 억명, 국내총생산(GDP) 19조7640억 달러의 거대 경제권이 탄생해 유럽연합(17조5100억 달러)을 앞지르게 됩니다.
그리고 지난달 21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제18차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경제공동체와 관련한 ‘로드맵’을 담은 최종 보고서를 채택한 겁니다. 여기엔 ▶역내포괄적경제협정(RCEP)을 통해 무역을 활성화하고 ▶아세안+3 거시경제 연구소를 통해 금융시장 안정성을 높이며 ▶인적개발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자는 내용 등이 담겼습니다.
하지만 동아시아가 유럽연합(EU) 같은 긴밀한 공동체로 거듭나기까진 숙제도 많습니다. 지금까지 ‘아세안+3’ 협력사업의 성과는 경제 분야에 몰려 있습니다. 또 유럽 국가들보다 이데올로기나 정치체제·산업구조 차이가 심해 노동력 이동이 쉽지 않다는 점도 걸림돌입니다.
특히 2차 대전 당시의 상흔 같은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고 한 울타리 안에 모두 품는 것도 난제입니다. 무엇보다 중국이 위상이 갈수록 커지면서 이 때까지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해온 우리나라의 입지가 어떻게 바뀔지도 주목할 부분입니다.
글=임지수 기자 yim.jisoo@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