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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나이 든 존재에 경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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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리
신예리 기자 중앙일보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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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

3번의 입원과 2번의 응급실행…. 이생에서의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했다.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할딱거리며 숨만 겨우 내쉬는 모습이 어찌나 애처롭던지. 하지만 매정한 게 사람인지라 건강보험도 안 되는 치료비가 눈덩이처럼 불어가자 이제 그만 놓아 버릴까 싶기도 했다. 기적적으로 실낱같던 생명은 되살아났고, 잠시나마 모진 생각을 품었던 스스로를 자책하던 참이었다.

노인이 사랑 받기 어려운 시대 … 영화 ‘인턴’은 판타지
남은 시간 많지 않은 분들께 좀 더 친절할 순 없을까

 “앞으로 이런 일이 자주 있을 겁니다. 늙으면 병치레가 많을 수밖에 없잖아요, 사람이나 고양이나.” 마침내 퇴원 날, 의사가 던진 경고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년이면 9살. 사람 나이론 얼추 오륙십이 되는 우리 집 애완묘 얘기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보송보송한 솜털의 아기 고양이가 어느덧 노년기에 접어든 거다. ‘졸지에 늙은 고양이 모시고 살게 됐구나’. 씁쓸하던 차에 문득 생각이 엉뚱한 데 미친다. 고양이 병구완에 지극정성인 딸을 보다가 과연 내가 늙고 병들어도 저럴까 궁금해진 거다. “엄마가 할머니 돼도 똑같이 해 줄 거지?” 기가 막힌다는 듯 대꾸조차 안 하는 딸. 하지만 말 안 해도 안다. 기대하지 않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다는 걸.

 손 많이 가고 돈 많이 드는 건 노인이나 아기나 매한가지다. 아기는 귀엽기나 하지, 노인은 귀찮기만 하다며 다들 떠맡기 싫어 고개를 젓는다. 젊은이들 사이엔 ‘노인충(蟲)’이란 참담한 말까지 유행한다고 한다. 해 주는 것도 없으면서 대접만 받으려 드는 데 대한 반감 때문이라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공경은 고사하고 밥값 못하는 밥벌레 취급이라니…. 세상이 빛의 속도로 변하다 보니 나이 든 자의 지혜와 경험 따윈 일찌감치 용도 폐기해 버린 모양이다.

 올해 73살인 명배우 로버트 드니로가 인턴 사원으로 나온 영화 ‘인턴’을 두고 “판타지”란 비판이 쏟아진다. 열정 페이로 혹사당하는 인턴들의 실상을 왜곡했다는 거다. 난 좀 다른 이유로 이 영화를 판타지라 느낀다. 할아버지 인턴 사원이 회사 내 ‘최고 인기남’이 된다는 비현실적 설정 탓이다. 배려와 아량, 유머감각은 기본. 디지털기기나 페이스북 사용법쯤 조금 도와주면 금세 마스터하는 놀라운 적응력, 딸뻘인 여자 상사를 깍듯이 모시며 여성 차별에 진심으로 분개할 줄 아는 성 평등의식, 거기다 한참 어린 여자가 봐도 “귀엽다” 할 정도의 외모를 갖춘 70대 남자라니…. 영화는 이쯤은 돼야 노인도 사랑 받을 자격이 있다는 잔인한 메시지를 던지는 듯하다.

 나이 먹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프랑스 작가 앙드레 모루아는 말했다. “뒤를 잇는 세대의 눈에 장애가 아니라 도움을 주는 존재로 비치게 하는 기술, 경쟁 상대가 아니라 상담 상대라고 여기게 하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거다. ‘인턴’ 속 로버트 드니로는 이런 기술의 달인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누구나 그와 같을 순 없다는 게 문제다. 더욱이 경제난과 열악한 복지가 청년과 노인 세대를 대결구도로 몰아가는 이때, 아무리 노력한들 노인이 사랑 받기란 갈수록 어려워진다.

 계절이 바뀌는 탓일까. 유달리 부고가 많이 날아드는 요즈음이다. 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더니 미처 예기치 못했던 이별에 황망해하기도 한다. 이제 내 나이도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인가.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로 노인이 대접 받을 자격은 충분하다 싶다. 세상의 좋은 것들만 누리기에도 아쉽고 또 아쉬운 시절 아닌가. 딸의 대학입시를 마친 뒤 이런 얘길 했다. “지금까지 20년간 내 인생의 우선순위는 너였다. 내 주말도, 내 휴가도 모두 널 위해 썼다. 이제부턴 달라질 거다. 너와는 함께할 시간이 많지만 할아버지·할머니와는 그럴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해마다 한 번씩은 부모님 모시고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이유다.

 ‘내가 나이 들고 머리숱이 줄어도/내가 64살이 되어도/당신은 나를 필요로 할 건가요, 나에게 밥을 차려줄 건가요?’ 1967년 비틀스가 ‘내가 64살이 되어도(When I’m Sixty-Four)’란 노래를 내놨을 때 혹시 지금 같은 세상을 예감했던 것일까. 우리 집 늙은 고양이에게도 귀엽디귀여운 아기 시절이 있었듯 처음부터 노인이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나이 든 존재들에게 조금만 더 친절을 베풀면 안 될까. 당신도, 나도 어김없이 노인이 될 테니.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