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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주의 좌충우돌 한식 알리기] 바싹 말린 백김치에 오징어 먹물 과자…환상의 블랙&화이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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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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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둥성 칭다오 행사에서 김치를 담그는 참가자들. [사진 한윤주]

한식 해외 홍보 행사를 숱하게 진행하면서 김치는 항상 고민의 대상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처음 접하는 대다수 외국인에게는 꼬릿꼬릿한 젓국 냄새에다 매운맛으로 인해 피하고 싶을 음식이기 때문이다. 밥과 국이 나가는 만찬용 반상 코스는 그나마 낫다. 식사류가 없는 리셉션의 경우엔 김치를 어떻게 올릴지 도통 표현할 길이 없었다.

 지난 19일 중국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에서 열린 ‘김장 나눔, 사랑 나눔’ 행사도 마찬가지였다. 행사는 한국 김장철에 맞춰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김장문화를 중국에 알리고 전파하려는 취지로 열렸다. 주칭다오 한국 총영사관이 주최하고 ‘종가집 김치’를 만드는 대상FNF가 절인 배추와 속 500㎏을 협찬했다. 칭다오의 오피니언 리더급 부인들이 모여 김장을 하고 현지 소외 계층에게 전달한다고 했다. 이제껏 김치를 주제로 한 해외 한식 행사를 진행해본 적 없었기에 새로운 도전에 흥분되면서도 깊은 생각에 빠졌다.

 우선 시각적으로 그들이 갖고 있는 김치 이미지와 다르게 표현해 보자. 백김치의 물기를 짜낸 뒤 삶아 말린 소창(이불 안감 등으로 쓰는 직물)에 한 겹 한 겹 정성스레 물기를 없앴다. 건조기에 몇 시간 말리고 오븐에 넣어 더욱 바삭하게 만들었다. 길게 찢은 백김치를 몇 겹 겹쳐 세로로 꽂으니 꽃잎처럼 보였다. 백김치의 하얀 색이 돋보이도록 동해 오징어 먹물로 튀일(Tuile·프랑스식 타원형 과자)을 만들어 곁들였다. 완성된 ‘백김치칩’(사진)은 리셉션 테이블 중앙을 밝히며 참석 인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번 행사가 열린 산둥 지역은 오늘날 우리가 주로 쓰는 배추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한반도에선 재래종 배추가 압도적으로 쓰였다. 그러다 1882년 임오군란을 전후해 조선에 중국인이 집단거주하기 시작하면서 기존 배추와 품종이 다른 결구(結球)배추가 한반도로 들어왔다. 산둥성에서 주로 유입된 이 배추는 중국에서 들어왔다는 이유로 ‘호배추’라고 불렸는데, 이것이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우리의 김치와 접목돼 대표적인 배추김치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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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 온 식재료를 전통 장르 김치에 포함시키고 정과 마음을 나누는 문화유산으로 발전시킨 선조들의 지혜가 대단하지 않은가. 대상 측이 지난해 12월 중국 내 5대 도시에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 88%가 김치를 알고 82%가 맛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한국 김치 시장잠재력이 상당하다는 뜻이다. 2010년 중국 측이 멸균절임류 위생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우리 김치 수출이 전면 중단됐지만 이르면 내년 중 김치가 비멸균발효성 절임 채소로 구분돼 수출 물꼬가 트일 전망이다. 120년 전 우리에게 건너온 이국의 식재료가 김치 문화와 융합되고 재창조됐듯 오늘날 우리의 김치가 중국에 수출되면 문화 간 융합을 어떻게 이룰지 기대된다.

한윤주  한식 레스토랑 콩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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