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는 민중미술이자 팝아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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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영화 메트릭스가 뜨는 이유가 뭐냐. 동서양 경계 허물어지고 고급.저급 문화가 뒤섞이는 현상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그 속에서 문화의 핵폭발이 일어난다."

'말(馬)'의 작가로 유명한 화가 김점선(57)씨가 이번에는 '화투'로 소재를 옮겼다. 할머니들이 심심풀이로 쭈그리고 앉아 패를 펼치던 화투를 그림으로 그려낸 것. 그것도 '나는 성인용이야'(마음산책)이라는 에세이와 함께 냈다.

저급이라며, 혹은 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저만치 치워놨던 화투를 화폭으로 끌어 들이고, 이것과 관련해 본인이 평소 못다한 이야기를 글로 풀었다. 화투 그림을 틈틈이 끼워넣은 책에서는 김점선의 생각, "상식 탈출, 내 멋대로 살기"가 드러난다.

이번 책은 '나, 김점선'(깊은샘)'10㎝ 예술'(마음산책) 이후 세번째다. 그 이전 책들이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면, 이번에는 편하게 수다 떨듯 요새 느끼는 감정, 일상의 모습이 더 많다.

책에 나온 이웃사촌인 소설가 박완서씨와의 일화 한토막. 친구의 삶을 글로 써보겠다는 김점선씨 말에 박씨는 "누가 불쌍해? 내가 보기엔 니가 더 불쌍해. 걔는 결혼두 몇 번씩이나 했다며"라고 쏘아댄다. 글과 말에서 박씨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길래, 기자가 "박완서 선생 자주 만나세요"했더니, "안 만나. 남편이 유언으로 나보고 최소한 한사람이라도 싸우지 말고 죽으라대. 그게 박완서씨야. 그래서 싸울까봐 안 만나"라고 대답하는 그.

그런데 이번에는 그 허기를 화투로 채운다. "아이디어가 안 떠오를 때 화투를 만지면 정신도 환기되고 좋잖아"라며 "화투를 민중오락.민중미술.팝아트로 봐야 한다"고 침을 튀겨가며 설명한다. 이 화투 그림은 27일부터 역삼동 스타갤러리에서 전시된다.

또 김점선이 직접 그린 화투패가 실제로 제작돼 팔린다. 어쨌거나 작품이 값싸게 찍어지는데 불만없냐는 물음에 그는 "상관없어. 화투에 김점선 얼굴이 나온 패도 있다. 그게 나오면 '싹쓸이'하는 규칙도 있어"라고 한술 더 뜬다.

글=홍수현,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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