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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산후조리원까지 세금 들여 지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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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에스더 기자 중앙일보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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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스더
사회부문 기자

“절반 가까운 국내 산모들이 출산 뒤에 산후조리원을 이용합니다. 그런데 이용 요금이 비싸다 보니 저소득층 산모는 이를 이용하지 못해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잖습니까. 공공 산후조리원을 꼭 만들어야 합니다.”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에서 남인순(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자신이 발의한 모자보건법 개정안의 불가피성을 주장했다. 이 법안을 지지하는 야당 의원들과 이를 반대하는 정부 관계자·여당 의원 간에 토론이 격해졌고 급기야 언성이 높아지며 충돌했다. 쟁점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공공 산후조리원을 설치·운영할 수 있다’는 조항.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신생아를 집단으로 모아두는 시설은 감염 사고에 취약해 세계보건기구(WHO)와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권장하지 않는다”며 “세금을 들여 확대하고 장려할 만한 시설은 아니다”고 맞섰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성주 의원은 “야당 시장인 이재명 성남시장이 하는 것이라 반대하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남시의 무상 공공 산후조리원 정책은 정부 반대로 추진이 어려운 상황이다. 25일 재차 논의했지만 평행선이었다. 야당은 “무조건 통과”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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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고령 산모가 늘고, 핵가족화로 인해 친정이나 시댁에 산후조리를 부탁하기 힘들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출산 직후 누군가 산모 건강을 돌봐줄 필요가 있다. 출산 후 산후조리원을 이용하는 산모가 적지는 않다. 그렇다고 굳이 국가와 지자체가 큰돈을 들여 공공 산후조리원을 지어야 할까. 게다가 성남시처럼 산모의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무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옳은 걸까. 산후조리를 돕고자 한다면 다른 길이 있다. 2006년부터 정부가 시행하는 산모·신생아 도우미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전문 산후관리도우미가 가정을 방문해 산후조리원과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신생아를 돌봐주고 산모에겐 식사 준비·마사지를 한다. 지자체 차원에서 대상자를 저소득층 위주에서 그 위 계층으로 확대하거나 서비스 종류를 늘리면 된다. 꼭 시설 이용을 원하는 산모에겐 비용의 일부를 지원할 수도 있다.

 산후조리원은 전 세계에서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서비스다. 이런 것까지 공공시설로 만들기보다 출산 인프라를 확대하는 게 바람직하다. 전남 강진군을 보자. 2011년 몇 년간 삼고초려 끝에 산부인과 의사를 초빙해 강진의료원에 산부인과를 열었다. 이 덕분에 임신부들이 대도시로 가는 불편을 덜었고 출산율이 오르고 있다. 전남 서남부의 출산 허브 역할까지 한다. 진정한 공공의 역할은 이런 것이다. 게다가 공공 산후조리원 설립을 법에 담으면 결국 예산 지원으로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에스더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