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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아이 69명 낳고, 손톱 60년간 안 깎고 코로 풍선 불기 등 140개 기록 보유자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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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기네스 기록 인증서를 받은 가수 싸이(오른쪽). [사진 guinnessworldrecord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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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이 있다. 22개 언어로 번역돼 세계 70여 개국에서 출판되며 지금까지 1억4000만여 부가 세상에 뿌려졌다. 저작권이 있는 책 가운데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판매됐다 . 비공식적으론 미국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도난당하는 책. 최초(最初), 최다(最多), 최대(最大), 최소(最小), 최장(最長) 등 세상 모든 사물과 현상에 대한 최고의 기록을 모은 책, 『기네스북(Guinness World Records)』이다.

[세계 속으로] 환갑 맞은 ‘기네스북’
1억4000만부 팔린 세계 베스트셀러
매년 5만 건 새 기록 중 4000건 선정
맥주 많이 마시기, 도로에서 차 경주 등
건강 해치고 사고 위험 행위는 제외

 『기네스북』은 하찮은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아일랜드의 맥주회사 ‘기네스’의 사장이던 휴 비버 경(Sir)은 1951년 한 사냥 모임에서 유럽에서 가장 빠른 새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에 끼어들게 된다. 비버 경은 ‘ 수많은 펍(Pub·영국식 선술집)에서 다양한 주제로 술꾼들이 논쟁과 내기를 벌이겠군’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질문에 답을 담은 책을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54년 회사의 이름을 딴 ‘기네스 오브 레코드’가 세상에 나왔고 펍에 무료로 뿌려졌다. 책보다는 전단에 가까웠지만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이듬해인 55년 8월 호화 양장본으로 만든 197쪽짜리 『기네스북』이 유료로 판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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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네스북』은 ‘기록의 역사’다. 초기엔 기본적인 기록만 담겼다. 가장 빠르고 크거나 작은,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에 대한 기록이 주를 이뤘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끼리 경쟁해 만들어낸 기록을 집중적으로 다루게 됐다. 스포츠 종목에서 세운 최고 기록부터 가장 많은 아이를 낳은 여인(러시아의 표도르 바실리예프·69명 출산), 60년 동안 손톱을 자르지 않은 사람, 귀 털을 가장 길게 기른 사람(25㎝)도 기록한다.

 기네스 기록은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롭게 갈아 치우기를 반복한다. 전 세계 누구라도 기네스 레코드 에 기록 도전 신청을 할 수 있다. 『기네스북』의 규정에 따라 적절한 증거만 제출하면 기록을 인정받을 수 있다. 이렇게 매년 5만여 건의 새로운 기록이 쏟아진다. 기네스 레코드는 이들 기록 중 4000여 개를 추려 매년 크리스마스 선물용으로 출간한다. 『기네스북』 편집부는 해마다 재미없는 기록이나 문제 소지가 있는 부문을 삭제하거나 새로운 부분을 추가한다.

 올해 환갑을 맞은 『기네스북』의 성격도 세월에 따라 많이 변했다. 윤리적·도의적으로 문제가 있는 기록은 등재하지 않는다. 사람이나 동물을 해치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가장 무거운 물고기’ 기록을 깨기 위해 애완용 물고기에게 과하게 먹이를 먹인 경우도 동물 학대 논란이 일면서 영구 삭제됐다. 기록 깨기에 도전하는 사람의 건강을 해치거나 생활을 어렵게 만들 경우도 기록에서 제외된다. 이 때문에 91년 맥주나 와인 등 알코올 음료 마시기와 관련한 기록도 삭제됐다. 일반 도로에서의 자동차 경주 기록도 사고 위험 때문에 삭제됐다. 또 외모 심사처럼 순위나 기록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경우도 『기네스북』에 오르지 못한다.

 지난달 중국 양저우(楊州)에선 ‘세계 최대 볶음밥’ 기록에 도전하려다 등재가 취소됐다. 4192㎏의 볶음밥 대부분이 버려지거나 돼지 먹이로 쓰이면서다. 『기네스북』 중화권 관리자인 양리나는 “식품과 관련한 기록에 도전할 때 일반인들이 이를 먹고 낭비해선 안 된다는 규정에 따라야 한다”며 “기네스 레코드는 부도덕한 기록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세상에서 가장 큰 음식’으로 『기네스북』에 오르려면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지금까지 기네스 기록 최다 보유자는 누굴까. 미국의 애슈리타 퍼먼(61)이다. 그는 79년부터 ‘점핑 잭(팔 벌려 뛰기)’ 기네스 기록(2만7000회)을 시작으로 ‘1.6㎞ 재주 넘으며 빨리 가기(19분11초, 2000년)’ ‘3분 만에 코로 풍선 불기(28개)’와 같은 140여 개 분야의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는 “ 인간의 능력에 한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기록에 도전한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세운 『기네스북』 기록도 많다. ‘강남스타일’의 가수 싸이는 인터넷상에서 가장 많이 본 동영상 등 4개의 기네스 세계 기록에 올라 있다. 아이돌 그룹 ‘제국의아이들’ 멤버 광희는 2011년 환경의 날 기념행사에서 252벌의 티셔츠를 입어 ‘한번에 가장 많은 옷을 입은 사람’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그러나 그해 연말 스리랑카의 도전자가 257벌의 티셔츠를 껴입어 광희의 기록은 깨졌다. 개그맨 강호동도 93년 대전 엑스포 당시 ‘가장 많은 사람과 악수하기’에 도전해 8시간 동안 관람객 2만8233명과 악수를 해 『기네스북』에 등재됐다(현재 기록은 2012년 인도에서 수립된 4만8870명). 국내 서점에선 『기네스북』을 구할 수 없다. 2001년 7월 기네스 레코드는 ‘기네스 이름을 단 인증을 남발한다’며 한국기네스협회와의 인증·출판 계약을 해지했다.

 『기네스북』의 또 다른 이름은 ‘도전’이다. 등재되는 시시콜콜한 기록은 하찮아 보인다. 그러나 그 기록 경신을 위해 자신을 단련하는 누군가의 노력과 끈기는 상상 이상이다. 『기네스북』 측은 도전을 이렇게 정의한다. “어려운 업적에 대한 시도, 이는 인생을 흥미롭고 위대하게 하는 매우 의미 있는 요소다.” 『기네스북』은 단순히 수치를 기록하는 책이 아니다. 한계를 뛰어넘는 인간의 발자취를 담은 도전의 역사다.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S BOX] 5억원 들인 가마솥 등재 못한 괴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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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타이틀의 유혹은 강렬하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은 최근까지 앞다퉈 기네스 도전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무턱대고 사업을 진행해 전형적인 예산 낭비의 사례라는 불명예를 얻기도 한다.

충북 괴산군의 경우 5억6000만원을 들여 무게 43.5t의 대형 가마솥(사진)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미 호주에 더 큰 질그릇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돼 기네스 기록 등재를 포기했다. 이 가마솥은 옥수수와 감자만 몇 번 찌고 사실상 방치됐다. 기네스 기록에 올라도 재미를 못 본 사례가 있다. 울산 울주군의 초대형 옹기는 기네스 기록에 없는 분야였다. 급히 기준을 정해 등재시켰지만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돼 관심을 끌지 못했다. 강원도 양구군청은 2009년 3월 세계에서 가장 비싼 해시계(66만7225달러)를 제작해 기네스 기록에 등재됐지만 이 해시계는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못하는 애물단지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권오인 경실련 경제정책팀장은 “지자체의 무분별한 『기네스북』 도전은 전시·탁상 행정의 표본”이라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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