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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폭탄범 잡은 깐깐 검사 8만 명 축구팬 목숨 구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동북부에 있는 축구장 스타드 드 프랑스. 독일과 프랑스 축구대표팀의 A매치가 열리는 동안 경기장 인근에서 세 차례 폭발이 일어났다. 폭탄을 장착한 조끼를 입은 이슬람국가(IS) 소속 테러리스트가 경기장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던 중 적발되자 자폭한 게 시발점이었다. 15분 간격으로 두 차례의 폭발이 더 있었다. 큰 폭발음 탓에 선수들이 경기를 멈출 정도였지만, 피해(행인 1명 사망)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테러리스트는 경기를 관전하던 프랑수아 올랑드(61) 프랑스 대통령과 축구팬 8만 명의 목숨을 노렸지만 경기장의 안전망을 뚫지 못했다.

이번 사건은 테러를 비롯한 경기장 내 사고 예방 시스템의 중요성을 일깨운 사례다. 경기장 안전 시스템의 효용을 확인한 프랑스는 '보안을 한층 강화한다'는 전제를 달아 내년 유럽축구선수권(유로2016)을 예정대로 개최하겠다고 했다.

스포츠 현장은 종종 테러리스트의 표적이 된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선 팔레스타인 테러단체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단을 노리고 선수촌을 급습해 11명이 숨졌다. 2013년 보스턴 마라톤에서는 결승점 부근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 소행의 폭탄테러로 3명이 사망하고 260여명이 다쳤다.

비록 보스턴 마라톤 테러를 겪기도 했지만 미국은 테러 방지 시스템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2001년 9·11 테러 사태 이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테러 방지를 위한 인력 및 시설의 배치를 의무화했다.

미식축구팀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홈 구장 리바이스 스타디움은 홈 경기 안전 시스템의 교과서다. 경기 당일 경호업체 직원 3000명과 지역 경찰 2000명이 경기장 안팎을 지킨다. 메이저리그는 야구 경기장마다 국제공항 수준의 보안 검색대와 무장경찰 및 보안 인력을 배치한다.

소지품 검사도 철저하다. 커다란 배낭에서부터 손바닥 만한 핸드백까지 물건을 담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가방을 검색한다. 지난 7월 애너하임 에인절스 홈 구장을 방문한 기자는 마시던 생수병을 일부러 손에 들고 검색대 통과를 시도해봤다. 즉시 경고음이 울리더니 보안요원 네 명이 기자를 에워쌌다. 보안요원은 "당장 물병을 버리지 않으면 경기장 밖으로 쫓아내겠다" 고 말했다.

사고 예방 노력은 경기장 안에서도 이어진다. 경호업체 직원들 외에도 경기장 곳곳에 배치된 안내 직원들이 관중 동향을 수시로 살핀다. 거동이 수상하거나 과도하게 흥분한 팬이 보이면 즉시 무선 통신으로 경호팀에 연락한다. 미국과 유럽의 프로스포츠 경기장에서는 물의를 빚은 관중을 퇴장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인적사항을 기록해 경기장 출입을 막는 시스템이 일반화 돼 있다.

국내 프로스포츠는 테러에 무방비나 다름없다. 지난 15일 고양 오리온과 전주 KCC의 프로농구 경기가 열린 고양체육관을 찾았다. 출입구에 짐 검색대는 아예 없었다. 배낭을 멘 기자가 체육관 내 기자석에 앉기까지 보안요원을 여러 명 지나쳤지만 "가방 안을 보여달라"는 요구는 없었다. 다른 농구장 사정 또한 비슷하다.

대만에서 진행 중인 야구 국가대항전 '프리미어 12'의 상황도 엇비슷하다. 15일 한국-미국전이 열린 톈무 구장은 국제대회 답지 않은 허술한 보안으로 빈축을 샀다. 경기 후에는 원인 모를 화재도 발생했다. 윌리 랜돌프 미국 감독의 기자회견 도중 화재 경보음이 울렸지만 대회 조직위원회는 대피 안내를 하지 않았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에야 소방차가 출동해 4층 전광판 관제실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했다.

국내 프로축구와 프로야구는 안전 기준을 마련해 적용 중이다. 프로축구는 폭약류와 액체류의 경기장 반입을 일절 금지한다. 프로야구는 올해부터 'B 세이프' 캠페인을 전개하며 주류 및 부상을 입힐 수 있는 물건의 반입을 차단한다.

경기장 안전을 책임지는 전문경호업체 TRI의 김성태 대표는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인식이 뿌리 내린 서구권과 달리 국내 팬들은 보안 검색에 드는 시간을, 구단은 비용을 아까워한다"면서 "이제 우리나라도 테러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철저한 보안 검색이 우리의 생명을 구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지훈·박린·김효경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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