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 제작·연출 윤석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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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 더 피버(Get the Fever)!"

윤석화씨는 요즘 이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공연 전 무대 뒤에서 스태프와 배우들이 모여 파이팅을 외칠 때, 공연 후 뒤풀이 술자리에서도, 심지어 기자와 만나 주스 한잔을 마실 때조차 그는 이렇게 부르짖는다. "열정을 갖자!"고.

'겟 더 피버'는 그가 오랜만에 제작자 겸 연출자로 나선 '토요일 밤의 열기'의 모토이기도 하다. 작품에 대한 열렬한 애정이요, 일종의 깜찍한 홍보 전략인 셈이다. 그 덕분인지 지난 14일부터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 '토요일 밤…'에 대한 관객 반응이 뜨겁다.

이미 뮤지컬 본고장에서 검증받은 작품인데다, 비지스의 음악과 화려한 춤이 받쳐주니 그 인기는 당연한 것이 아닐까? 윤씨의 대답은 "절대 아니다"다.

"외국의 뮤지컬을 들여왔다고 해서 무조건 쉽게 무대에 올리는 건 아니에요. 안무가에게 춤을 배웠을 뿐, 무대 세트와 배우들의 연기는 모두 우리 손으로 새롭게 창조했어요.

적어도 브로드웨이에 올린 것보다는 작품성 면에서 뛰어나다고 자신합니다. " 그는 한국에서 제작한 '토요일 밤…'가 역으로 국제 무대에 올려도 손색이 없다는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도 그럴 것이 '토요일 밤…'는 국내 뮤지컬 제작 방식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3차에 걸친 치열한 오디션, 6개월이 넘는 연습 기간, 2주간의 국내 최초 프리뷰 공연, 박건형이라는 새로운 스타 발굴 등이 그것이다. 빠듯한 제작비 때문에 몇개월 내에 뚝딱 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기존 방식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무엇보다 윤씨가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무대다. 영국 웨스트엔드에 오르는 원작의 무대 제작비가 36억여원인 데 반해 윤씨는 2억원에 더 근사한 무대를 만들어냈다.

"극중 주인공의 사랑이 다리 위에서 이뤄지는 만큼 다리는 그림 대신 실제로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스태프는 절대 안된다고 했지만 '해보고 안된다고 하라'며 밀어붙였어요. 결과는 대성공이었죠."

이렇게 해서 세워진 커다란 브루클린 다리 외에 대형 거울 세트 등이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윤씨의 뮤지컬 제작은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6년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송 앤드 댄스'를 제작.연출하면서부터다.

"제작비 30만원을 마련하자고 어머니가 주신 쌍가락지를 전당포에 맡기고 오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하지만 그 때가 더 좋았어요. 요즘엔 1백배는 더 어려워진 것 같아요. 뮤지컬의 외형이 거대해지고 상업적인 면이 부각되니까 챙길 게 더 많거든요."

윤씨의 하루는 그 누구보다 분주하다. 음악 전문 월간지 '객석' 발행인으로, 극장 정미소의 주인으로, 뮤지컬 제작자로 24시간을 쪼개 써도 모자랄 정도다.

그러나 그녀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얼마 전 입양한 아들 수민(1)을 사랑하고 돌보는 것이다. "밤 늦게 지쳐서 들어가도 아이 팔베개를 해주고 잠들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녀다.

LG아트센터 첫 공연날 그곳에선 수민이의 백일잔치가 함께 열렸다. 입양아를 대외적으로 공개하는 일이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가 사실을 알게 될 나이가 되면 이미 내 사랑의 방식에 익숙해져 있을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서로 마음이 통하는데 이런 것들이 문제될 게 있나요. 아이도 그걸 이해하리라 믿어요." 그녀의 열정과 확신은 일과 사랑 모두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다.

글=박지영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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