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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지는 낙엽은 가을바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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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떨어지는 낙엽은 가을바람을 원망하지 않는다”(落葉不怨秋風)고 한다. 가을날 자신을 비우고 희생할 줄 아는 잎이 있기에 봄날 새싹이 파릇파릇 움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날로 차가워지는 가을바람에 곱게 물든 잎들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 우리네 인생도 저러한가 싶어 어딘지 허전함이 느껴진다.

 낙엽은 그 자체가 지닌 쓸쓸함으로 인해 많은 문학작품의 소재가 돼 왔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가 나오는 구르몽의 ‘낙엽’과 더불어 ‘낙엽은 나에게 살아 있는 고마움을 새롭게 해 주고’로 시작하는 이해인의 ‘낙엽’ 등 시에도 많이 등장한다. 노래 제목이나 가사에도 적지 않게 나온다.

 가을이 깊어 가면서 단풍 색깔은 더욱 고와졌지만 비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지는 잎도 많아졌다. 페이스북 등 SNS에는 떨어지는 잎들을 보면서 아쉬워하는 사진이나 글이 적지 않게 올라온다. ‘낙엽 떨어진 날’ ‘낙엽은 떨어지는데’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다’ ‘낙엽 떨어지는 가을이 슬퍼요’ 등의 제목이 보인다. 낙엽 사진과 함께 ‘낙엽 떨어지듯 우리의 정년도 다가온다’고 올린 사람도 있다.

 낙엽(落葉)은 한자어로 나뭇잎이 떨어짐 또는 떨어진 나뭇잎을 뜻한다. 단어 자체에 ‘떨어지다(落)’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낙엽이 떨어진다’고 하는 것은 정확하게 따지면 의미가 중복되는 겹말이다. ‘전기(電氣)가 누전되다’(→전기가 새다), ‘피해(被害)를 입다’(→피해를 보다), ‘돈을 송금하다’(→돈을 보내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낙엽’이란 단어를 피하고 ‘잎이 떨어진다’고 하면 좋지만 무언가 맛이 덜하다는 단점이 있다. ‘낙엽’에 들어 있는 고유한 이미지를 포기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낙엽이 진다’고 하면 된다. ‘떨어지다’나 ‘지다’나 의미에선 별반 차이가 없지만 ‘낙(落)’과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떨어지다’보다 그냥 ‘지다’가 더 잘 호응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낙엽 지는 그 숲 속에~’로 시작하는 이종용의 노래가 생각난다.

배상복 기자 sb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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