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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떠난 고미술품 해외선 대접 받는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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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2호 29면

백자대호, 42.2×42㎝(h), 조선시대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은 도자기에 관심 있는 이라면 꼭 한 번 친견해야 하는 성지와 같은 곳이다. 1982년 개관 초기에는 일본 재벌 아타카(安宅) 그룹이 남긴 한국도자기와 중국도자기 컬렉션이 기초를 이뤘다가 지금은 한국도자기가 단연 우위를 차지하는 간판 소장품이 됐다. 1999년 평생 수집한 한국도자기의 정수 351점을 기증한 재일교포 이병창 박사 덕이다. 그의 알토란 기증품 덕분에 미술관은 전 세계에서 손꼽는 한국도자기 전문 미술관으로 부상했고, 일본인의 한국도자기 사랑에 자부심을 더해줬다.


오는 29일 홍콩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리는 서울옥션의 제17회 홍콩경매 ‘고미술편’에는 62점이 출품됐는데 그중 55점을 한 일본인 수집가가 내놨다 해서 화제다. 도쿄에 살고 있는 이 컬렉터는 지난 50여 년 한국 고미술품을 모아왔는데 그동안 일본 주요 미술관 전시와 전문가 감식에서 평가받아온 실물들이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초대 관장을 지냈고 지금은 명예 관장인 이토 이쿠타로(伊藤 郁太郞)가 좋은 평을 했다는 설명이 보증서처럼 붙어 있다. 이토는 한국도자기 연구에 바친 공을 인정받아 1995년 한국 정부로부터 문화훈장 보관장을 받았던 인물이다. 일본에서 오히려 더 귀한 대접을 받는 한국도자기의 운명을 보여주는 한 예다.


이번 경매의 하이라이트는 ‘백자대호’다. 흔히 달항아리라 불리는 몸통이 둥글고 우람한 백자 도자기로 특히 높이가 42㎝여서 손꼽는 명품이라 할 수 있다. 추정가는 18억 원이다. 전 세계에 남아 있는 작품이 20여 점을 헤아리는 고려시대 나전칠기도 눈길을 받고 있다. 출품작인 ‘나전칠국당초문합’은 상자 전면이 나전으로 문양된 장방형 작은 상자로 추정가는 3억 5000만 원이다. 이밖에 조선시대 ‘백자청화 초화문과형호’ ‘백자청화 춘하추동 시명병’ 등이 출품돼 모처럼 넉넉한 한국 고미술품 경매를 기대하게 만든다. 위탁품은 9~20일 서울 평창동 서울옥션 스페이스에서 먼저 볼 수 있다.


가파르게 치솟는 현대미술품 값에 비해 고미술품이 저평가돼온 세월이 꽤 흘렀다. 투자자의 취향과 미술시장 흐름에 따른 냉정한 결과라 해도 가치나 희소성을 따져보면 우리 고미술에 대한 푸대접은 미학적 측면을 떠나 조상 유물에 대한 예우란 점에서도 후손들로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식민지의 뼈아픈 역사, 전쟁과 분단의 상흔, 경제개발 위주의 고단했던 삶 등 지난 100년의 우리 처지가 고미술을 돌아볼 경황이 없었다 해도 그렇다.


지난 몇 년 새 세계 미술시장의 최강자로 떠오르며 급속 팽창한 중국이 자국의 미술품 값을 천정부지로 올려놓으며 연일 최고가를 갱신하는 걸 보고 있으면 우리가 분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문화재청이 10일 여는 ‘문화재기본법 제정안’ 공청회가 그런 재고의 자리가 될 수 있을까. 1962년 제정돼 시대에 뒤떨어진 감이 큰 문화재보호법도 이참에 한번 되짚어보면 어떨까.


정재숙


중앙일보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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