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기뻐하고 슬퍼할 줄 아는 것, 사람됨의 출발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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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배 스피치·토론대회 결선에서 ‘조인성팀’(연세대)의 송희권씨가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그는 “바른 인성을 만들어 가자는 의미에서 팀 이름을 ‘조(造)인성’으로 지었다”고 설명했다. [박종근 기자]

“가정폭력과 부모님의 이혼, 고교 자퇴까지 어두운 제 과거를 치유한 것은 소통의 용기였습니다.” 4일 오후 국회의장배 스피치·토론대회 시상식이 열린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 토론 부문 장원을 차지한 ‘조인성팀’(연세대)의 박민영(22)씨가 수상 소감을 밝히자 소란스럽던 객석이 조용해졌다. “죽기보다 싫을 만큼 힘든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련 덕분에 단단해졌습니다. 상대를 이해하고 저의 치부를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없었다면 지금도 저는 어두운 터널에 있었을 겁니다.”

균형 잡힌 논리로 상대·청중 설득
연세대 ‘조인성팀’ 토론 부문 장원
아버지와의 애증 진솔하게 고백
조여주씨 스피치 부문 장원 수상

 아버지의 알코올중독과 가정폭력으로 박씨는 8세 때부터 외가에서 두 동생과 함께 살았다. 아버지와 별거 중이던 어머니는 막내를 업고 보험 일을 했다. 몇 년 후 부모님이 한 집 생활을 다시 시작했지만 불화는 그대로였다. 박씨는 “부모님이 싸울 때면 집을 나갔고 어떤 날은 일주일의 절반을 찜질방에서 보냈다”고 말했다. 고교 2학년 때 자퇴를 선택하면서 집을 나왔다. 박씨는 “대학 입학 후에도 2년간 휴학하고 생활비를 벌었다. 부모님의 이혼 후 원망감 때문에 어머니와의 갈등도 커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 초부터 그에게 변화가 시작됐다. 토론 동아리에 들어간 것이 계기가 됐다. 박씨는 “모든 사안을 찬성과 반대 양쪽 입장에서 바라보면서 어머니의 입장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못했던 얘기들을 나누며 행복을 찾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동아리 친구인 송희권(22)씨와 함께하며 토론 역량을 키웠고 이번 대회에 함께 출전해 장원의 영광을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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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화 국회의장(왼쪽에서 둘째)과 장원 수상자들.

 이날 결선에서 두 사람은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 8강 반대, 4강 찬성, 결승에서 다시 반대 입장을 맡은 두 사람은 편견에 치우치지 않은 균형 잡힌 논리로 상대 팀과 청중을 설득했다. 이날 주제는 ‘불효자방지법’(부양의무를 저버린 자녀에게 책임을 묻도록 한 민·형법 개정안)이었다. 찬성 측 ‘바이블팀’(충남대)의 “부모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국가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맞서 ‘자정능력’을 논리로 내세웠다.

 자유토론에서 치열한 공방이 오간 후 마지막 발언에서 박씨는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듯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법은 질서와 정의의 수호신입니다. 그러나 법으로 강제해서 효의 마음이 생길까요. 오히려 법적 분쟁은 가족이란 둥지에 영영 치유되지 못할 상처를 남깁니다. 가정의 자정 능력을 가로막는 ‘불효자방지법’을 반대하는 이유입니다.” 객석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고 이들은 행사의 주인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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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필호 중앙일보 부회장(맨 왼쪽)과 금상 수상자들. 스피치(개인)·토론(2인 1팀) 각각 장원 1팀과 금상 2팀 등 총 6팀이 상을 받았다.

 또 다른 주인공은 스피치 부문 장원인 조여주(23·여)씨였다. 그는 사춘기 시절 겪었던 아버지와의 불화와 이를 극복했던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풀어냈다. 무대에서 그는 “아버지가 생사를 오가는 수술을 받던 날에도 미움과 사랑이 뒤엉킨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비뚤어졌던 그의 마음에 평온이 찾아온 것은 2012년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남에게 ‘은혜’를 베풀면서 제가 받은 ‘은혜’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습니다.” 조씨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원망의 감정을 내려놓고 나서야 있는 그대로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스피치 부문 금상 수상자인 서동오(55)씨는 “상대의 마음과 감정 상태를 헤아리는 것이 소통의 시작”이라고 했고, 유영주(24·여)씨는 “기뻐하고 슬퍼할 줄 아는 공감의 능력이 인성의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이날 스피치·토론 부문별로 한 팀씩 국회의장상(장원)을, 두 팀씩 중앙일보 사장상(금상)을 수상했다. 이외 참가자 전원은 국회 사무총장상(장려상)을 받았다.

 시상식에서 정의화 국회의장은 “인생의 성공은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다. 대회를 준비하며 참가자들 스스로 바른 인성을 함양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박씨의 수상 소감을 들은 정 의장은 『맹자(孟子)』의 ‘고자하(告子下)’ 편을 인용하며 “큰일을 할 사람에겐 견디지 못할 시련이 먼저 온다. 고통과 어려움 속에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단련하면 큰 사람이 된다”고 격려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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