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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정책, 통일 아니라 비핵·평화가 되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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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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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학
경희대 교수

한반도 상공에 먹구름이 끼어 있다. 북핵이다. 한반도를 향해 또 다른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미·중 갈등이다.

 2년 전 실시된 3차 북한 핵실험은 실로 북한 핵무기를 개발 단계에서 생산·배치 단계로 격상시킨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되었다. 이제 북한은 핵탄두와 투발 수단 모두에서 실질적으로 남한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들을 확보했고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동안 한·미 군과 관련 당국들이 제2의 한반도 전쟁 시뮬레이션을 진행해 온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시나리오에 따라 다르지만 공통적인 것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할 것이라는 점이며, 그 피해는 최대 사상자 1000만 명, 재산 파괴 및 경제 활동 중단에 따른 피해 1조 달러에 이른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전쟁은 한반도를 석기시대로 되돌릴 것이다.

 북핵 문제는 그 자체로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최근 한·미 정상도 ‘2015 북한에 관한 한-미 공동성명’을 통해 양국이 북핵 문제를 ‘최고의 시급성과 확고한 의지’를 갖고 다루기로 합의했다고 밝힘으로써 이러한 위기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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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한편 동아시아에서는 미·중 갈등이 점점 격화하고 있다. 이 갈등은 경제적으로 굴기하는 중국이 ‘치욕의 한 세기’를 청산하고, 기존에 형성된 미국 중심의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정치·군사적으로 수정하고자 하는 데서 발원한다. 중국은 미국에 ‘신형 대국관계’를 요구하고 있는데,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핵심이익’을 확대함으로써 미국 및 일본을 포함한 당사국들과 정면충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문제는 양국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이 미·중 갈등에 연루될 가능성인데, 바로 남북 갈등과 북핵이 연결 고리 역할을 한다는 데 있다. 목함지뢰 사건으로 발발된 지난 8월의 군사위기는 베이징의 대북 경고와 워싱턴의 전략적 억지에 일부 힘입어 해소되었다. 하지만 국제관계에서 무임승차는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 역할에 사의를 표하고, 급기야 군사 굴기를 상징하는 중국 전승절 행사에 미국 동맹국 중 유일하게 참석함으로써 중국 경사론을 확산시켰다. 하지만 이어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 경사론에 대한 대가를 요구했다. 중국이 국제 규범을 위반할 경우 목소리를 내라고 공개적으로 압박한 것이다. 미·중 갈등의 불꽃이 한반도로 튀면 한국의 대외 환경은 근본적으로 악화될 것이다.

 이중적 위기 해소의 정답은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연계해 동시에 타결하는 데 있다. 평화체제는 평화협정, 북·미 북·일 관계정상화, 동북아 평화안보 체제 등을 포함하는데, 기본적으로 남북한 안보를 상호 확보해 평화공존을 달성하는 것이다. 평화체제가 확립되면 북한에 대한 ‘적대시’ 환경이 해소돼 북한의 핵무장 필요성을 제거해줄 것이다. 이러한 해법들은 이미 한국도 동의하고 수용한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와 9·19 합의에 다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들 기념비적 합의는 이행 과정에서 파행을 빚고 좌초됐다. 한·미는 평화축보다 비핵화축을 강조하는 ‘선 비핵화’를 압박했으며, 북한은 합의를 깨고 핵 개발을 추진함으로써 북핵 문제가 위기로 치달아간 것이다.

 악화되던 북핵 상황에 전략적 무시로 대응하던 관련국들이 최근 다시금 정답에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평화협정과 관계정상화를 강조했으며,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북한이 비핵화를 이행할 경우 평화협정, 관계 정상화, 경제 원조 등 다양한 방식으로 북한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평화체제라는 정답은 그러나 근본적인 인식 전환을 요구한다. 남북한과 주변 국가들이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던 적대감을 청산하고 ‘평화공존’을 확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평화협정은 상대적으로 단순한 것에 속한다. 북한이 미국이나 일본과 수교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주한미군 역할을 한반도 안정자로 전환해 계속 주둔시키는 것도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실로 지난한 과제는 냉전 체제에서 70년간 유효했던 명제들을 남북한이 동시에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한 모두 적화통일이나 흡수통일을 포기해야 한다. 우리가 통일을 부르짖는 한 우리 경제 규모의 2%에 불과한 북한은 궁지에 떨 수밖에 없으며, 결국은 다시 핵과 같은 비대칭 탈출구를 뚫게 될 것이다. 역설적으로 통일 정책이 가장 통일을 가로막고 대결을 지속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독일 통일은 통일 정책이 아니라 평화공존 정책의 결과로서 찾아왔다.

 지금 한국 앞에는 위기와 기회의 창이 동시에 놓여 있다. 한국이 능동적으로, 그리고 조속히 기회의 창을 열지 않으면 위기의 창이 한반도를 삼킬 것이다. 우리의 자유민주주의와 번영하는 시장 경제가 북핵과 미·중 갈등에 수동적으로 위협당하도록 방치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이제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할 때다. 정답은 비핵·평화의 일괄 타결이다.

권만학 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