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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442명이 하루 참여한 ‘I.SEOUL.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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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나한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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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한
사회부문 기자

“공무원이 만들면 안 봐도 비디오.”

 지난 5월부터 서울시내 지하철역 광고판에선 이런 광고를 볼 수 있었다. 서울시가 새로운 서울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 공모전을 추진하면서 내건 광고였다. 시 관계자는 “시민 주도로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왜일까. 지난달 8일 ‘I.SEOUL.U’를 포함한 최종 후보작 3개가 발표되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3개 모두 이상하다’는 반응이 속출했다. 이후 지난달 28일 ‘나와 네가 서울로 이어진다’는 뜻의 ‘I.SEOUL.U’가 최종 선정되자 이번엔 이를 풍자하는 패러디가 끊이지 않고 있다. ‘I.SEOUL.U=전셋값을 마구 올리겠어’ ‘I.INCHEON.U=널 빚더미로 만들어 주겠어’ .

 2002년 만들어진 ‘Hi Seoul’을 새 브랜드로 교체하겠다는 계획이 올해 상반기 본격적으로 알려진 직후부터 예산 14억원을 들여 브랜드를 바꾸려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시장 시절 ‘Hi Seoul’을 만든 이명박 전 대통령 지우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박원순 시장은 이런 목소리에 ‘오로지 시민을 위한, 시민이 주도해 만드는 브랜드’라는 논리로 맞섰다. 출입기자간담회에서는 “나는 서울링(Seouling)이 괜찮지만 내 생각은 하나도 반영하지 않았다. 시민에게 모든 권한을 드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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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서울 브랜드 선포식에서 박원순 시장(앞줄 왼쪽에서 다섯째)이 현수막을 들고 있다. [뉴시스]

 그러나 실제 브랜드 제작 과정을 보면 ‘I.SEOUL.U’를 시민이 주도한 브랜드라고 인정하기가 석연치 않다. 가장 핵심적인 작업은 지난 9월 1일 시작됐다. 공모전을 통해 접수된 1만6000여 개의 시민 아이디어 중 표절 의혹이 있거나 중복된 것 등을 걸러내고 400개가 확정됐을 때다.

  정작 이 400개가 3개로 압축되는 동안 시민이 참여한 건 단 하루에 불과했다. 400개를 200개로 줄이는 작업이 진행된 9월 2일부터 3일 새벽까지다. 참여 시민도 시에서 모집한 내·외국인 자원봉사자 442명이 전부였다. 이들의 선택을 1000만 시민의 목소리로 볼 수 있을까. 이들이 추린 200개가 3개의 최종 후보작으로 선정되는 작업은 전문가 집단인 브랜드추진위원회와 시 용역 회사들이 전담했다.

 ‘시민 참여’는 ‘박원순 서울시’의 핵심 가치다. 이번 서울 브랜드 제작 과정에선 시민 참여가 소통 행정을 과시하기 위한 요식 절차에 그쳤다는 의구심이 든다. 차라리 온라인 공개 투표를 통해 모든 시민의 참여를 보장했다면 어땠을까. ‘시민이 골랐다’는 최종 후보작을 놓고 시민들 입에서 ‘누가 저런 걸 골랐느냐’는 탄식이 나오는 사태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김나한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