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원준, 강호들 꺾고 첫 우승 '반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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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판 위의 최고봉인 백두봉에 산사태 조짐이 완연하다. 전통의 백두급 강자들이 봉우리 아래로 맥없이 굴러떨어지고 새 강자들이 속속 정상을 넘보고 있다.

백두봉 판도 변화는 지난 18일부터 나흘간 전남 장성에서 열린 '2003 세라젬배 장성장사씨름대회'에서 확연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모래판의 왕눈이' 염원준(LG)은 대회 마지막날 백두급 결승에서 신예 박영배(현대)를 2-0으로 누르고 꽃가마를 탔다. 지난해 9월 원주장사대회 이후 9개월 만이다.

염원준은 새 얼굴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해 말 이후 '잊힌 선수'였다. 성적도 4~5품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솟아올랐다. 염원준은 8강에서 전통의 강자 황규연(신창), 4강에서 '모래판의 황태자'이태현을 차례로 누이고 가볍게 결승에 올랐다. 씨름계는 이를 두고 "후발 선수들의 약진이 두드러진 반면 정상급 선수들의 기량은 물러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진짜 주목할 인물은 박영배다. 박영배의 별명은 '거인들의 무덤'이다. 1m90㎝ 이상의 거구들이 즐비한 백두급에서 1m84㎝인 박영배는 분명 '단신'이다. 그런데도 거인들은 그 앞에서 맥없이 나가떨어진다. 박영배는 이번 대회 단체전과 개인전 8강에서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LG.2m18㎝)을 잇따라 모래판에 내던졌다. '원조 골리앗' 김영현(2m17㎝)과도 통산 1승1패로 팽팽하다.

김칠규 현대 감독은 "영배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장신에 대한 분석을 철저히 한 선수"라고 전하고 "단신의 핸디캡을 극복키 위해 빠른 몸놀림으로 장신 선수들의 중심을 흩뜨린 뒤 역습하는 작전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강자들의 침체는 이미 4월 진안장사씨름대회에서 예견됐었다.

이제 씨름판은 승자와 패자가 수시로 엇갈리는 춘추전국시대에 접어들었다.

진세근 기자

◆ 백두급 최종순위 ▶장사=염원준(LG)▶1품=박영배(현대)▶2품=강성찬(LG)▶3품=이태현(현대)▶4품=김경수(LG)▶5품=김영현(신창)▶6품=최홍만(LG)▶7품=황규연(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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