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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바람난 독일인 남편, 독일서 받은 이혼판결 효력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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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여기 40대인 독일인 남편과 여덟 살 연상의 한국인 아내가 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1998년 봄이었다. 독일 유학 중이던 A씨는 B씨와 사랑에 빠졌다. 같은 해 8월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이듬해 한국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했다. 부부는 두 아들을 낳았고 여느 가정과 다름없는 결혼 생활을 해 왔다.

현지법은 잘못 안 따지는 파탄주의
한국인 아내, 서울서 다시 소송
법원 “독일 판결, 한국서도 효력”

 그러던 2010년 3월 B씨가 독일 본사로 인사 발령이 나면서 탈이 났다. 먼저 독일로 간 B씨가 현지에서 독일 여성 C씨와 바람이 난 것이다. A씨는 남편의 불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한국 살림을 정리한 뒤 두 아들을 데리고 독일로 건너갔다. 그해 말 A씨는 나머지 정리를 위해 큰아들만 데리고 잠시 귀국했다. 그런데 며칠 후 남편이 이별 통보를 해 왔다.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다”는 편지를 보낸 것이다. A씨가 독일에 가서 B씨를 설득했지만 B씨는 독일 법원에 이혼 소송을 냈고, 2013년 2월 이혼 판결이 나왔다.

 A씨는 한국으로 돌아와 “독일에서의 이혼 판결은 ‘파탄(破綻)주의’에 따른 것으로 한국 민법이 정한 이혼 사유와 다르다”며 서울가정법원에 이혼 소송을 냈다. 독일에선 배우자 잘못과 상관없이 결혼 생활이 파탄 나면 이혼을 허용하는 파탄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반면 한국 법원은 바람을 피우는 등 잘못을 저지른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인정하지 않는 유책(有責)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남편은 이혼을 청구할 자격이 없다. 내가 낸 소송으로 이혼을 하겠다”는 게 A씨 측 주장이었다. B씨와 C씨를 상대로 1억원의 위자료도 청구했다.

 하지만 1심은 “독일의 이혼 판결은 대한민국에서도 효력이 있다”며 A씨의 이혼 청구를 각하했다. 재판부는 “피고 B씨가 한국 민법 적용을 회피할 목적으로 독일에서 이혼 소송을 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A씨의 위자료 청구에 대해선 “혼인 파탄의 주된 책임이 B씨와 내연녀에 있다”며 B씨는 5000만원, C씨는 2000만원을 각각 A씨에게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A씨는 항소했지만 2심 도 다르지 않았다. 서울고법 가사3부(부장 이승영)는 A씨의 항소를 기각했다고 28일 밝혔다. 재판부는 “위자료의 경우 B씨 측 잘못이 명백해 A씨 입장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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