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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장남 “어머니 죽음, 은행 전화 받고 알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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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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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천경자 화백의 유가족들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천 화백의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왼쪽부터 김정희(차녀)·이남훈(장남)·문범강(사위)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어머니를 어디에 모셨는지 알려달라.”

“큰누나는 어머니 묻힌 곳 밝혀야
정부도 훈장 등 제대로 예우하라”
30일 시립미술관서 추모식 열기로

 고(故) 천경자 화백의 작고 소식이 갑작스럽게 알려진 뒤 큰딸 이혜선(70)씨를 제외한 나머지 유족들이 27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처음으로 밝힌 입장은 이랬다. 천 화백은 두 번의 결혼 생활을 통해 네 명의 자녀를 뒀다. 기자회견장에서 장남 이남훈(67)씨는 “지난 19일 미국에 있을 때 한국의 한 은행으로부터 어머니의 통장 해지 관련 전화를 받아 사망 소식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화를 받고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누나(이혜선)가 전화를 낚아채 ‘상속 관계에 있어서 법적으로 동의 안 하면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며 “누나에게 왜 연락을 안 했느냐고 했지만 대화가 안 됐다”고 덧붙였다.

 둘째 딸 김정희(61)씨도 큰딸 이씨의 행동에 대해 ‘독단적’이라고 표현하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그는 “언니와 연락이 닿지 않아 어머니가 묻힌 곳을 모르는 상황”이라며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본 건 지난 4월 5일이고, 한국에서 가족관계증명서를 떼 본 결과 8월 6일에 돌아가신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천 화백은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뒤 외부와의 접촉이 끊겼다. 이후 그의 생사 여부는 늘 논란거리였다. 미국 뉴욕에서 천 화백을 모시고 살았던 큰딸 이씨가 8월 말께 서울시립미술관에 어머니의 유골함을 들고 방문한 뒤에야 그의 사망 소식이 국내에 알려졌다. 그간의 논란에 대해 유가족들은 “가슴 아픈 가족사와 연관되어 있다”며 말을 아꼈다. 김씨는 “언니가 어머니 일에 대해 독단적으로 행동하고 나머지 형제들을 고통스럽게 했어도 참고 포기하는 게 어머니에게 누가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천 화백이 생전 유산과 관련한 가족 분쟁을 놓고 “추접하다”며 싫어했기에 그간 침묵했다는 것이다.

 유족들은 고인에 대한 정부 차원의 예우가 적절치 못하다며 서운함을 밝히기도 했다. 김씨는 “서울시는 추모행사에 적극 나서 격식에 맞는 예우를 해주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사망 미스터리 등을 들며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지 않겠다는 것에 대해 납득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천 화백의 추모식을 30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기로 했다. 김씨는 “많은 사랑을 준 시민들이 애도할 기회도 마련하지 않고 평소 고인이 만나고 싶어 했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기회도 드리지 못한 채 쓸쓸하게 가시게 하는 것은 어머니의 뜻에 맞지 않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김씨와 장남 이씨, 사위 문범강씨, 며느리 서재란씨가 참석했다.

글=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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