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하게 망가진 황정음, 부담없이 빠져드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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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준(박서준)은 어머니가 사고로 숨졌던 비오는 날이면 일종의 트라우마를 겪는다. 이런 그를 어린 시절부터 다독여준 혜진(황정음)은 ‘보호받는 여자 -보호하는 남자’라는 통념을 뒤집는다. [사진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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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오리는 누구나 사랑하는 백조가 되었고, 시청률은 첫 회 4.8%(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에서 17.7%(지난주 11회)까지 가파르게 올랐다.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MBC 수·목) 얘기다. 지상파 로맨틱 코미디로는 최근 보기 드물게 큰 반향을 얻고 있다. 방송담당 이후남·이지영 기자와 영화주간지 magazine M 이은선 기자가 그 비결을 짚어봤다.

[TV를 부탁해] 그녀는 예뻤다
못생겨도 씩씩한 패션지 인턴사원
첫사랑, 직장 선배 얽혀 알콩달콩
여주인공끼리의 우정도 신선
시청률 17.7%로 가파르게 치솟아

 우선 이 드라마의 매력은 “시트콤 같은 재미, 생생한 캐릭터, 그리고 황정음의 귀엽고 씩씩한 매력”(이은선 기자)으로 요약된다. 드라마 초반, 여주인공 혜진(황정음)은 직장도, 애인도 없다. 그래도 매사에 씩씩하다. 패션의 ‘패’자도 모르는 채 우여곡절 끝에 패션잡지 인턴이 되어서도 매사를 그 씩씩함으로 풀어간다. 이런 혜진의 면모, 직장 안팎의 에피소드가 마치 유쾌한 시트콤처럼 펼쳐진다. 그 재미의 가장 큰 몫은 물론 황정음이다. 황정음은 출세작 ‘하이킥’ 시리즈에서 이미 시트콤에 최적화된 연기력을 확인시켰다. 마침 ‘그녀는…’의 조성희 작가 역시 ‘하이킥’ 시리즈를 거쳤다.

코믹한 연기로 눈길을 사로잡는 배우는 또 있다. 패션잡지 선배 기자 신혁 역의 최시원이다. MBC 예능프로 ‘무한도전’에 식스맨 후보로 나와 자신의 굴욕 사진마저 웃음으로 소화하던 모습이 맛보기였다면, 이번 드라마에선 그 매력을 맞춤형 캐릭터로 한껏 발산한다.

 무엇보다 혜진은 “예쁘지도, 예쁜 척하지도 않는 여자”(이지영 기자)라는 게 특징이다. 어렸을 때는 예뻤다. 자라면서 ‘역변’(외모의 부정적 변화를 가리키는 신조어)했다. 그래서 어려서 자신을 좋아했던 성준(박서준)과 오랜만의 만남에 나서기가 문득 부끄러워 멋쟁이 단짝친구 하리(고준희)를 자신인양 내보낸다. 설상가상 혜진의 직장 상사로 부임한 성준은 실수투성이 말단 인턴 혜진이 ‘첫사랑 혜진’이라곤 상상도 못한다. 혜진의 변신, 아니 역변의 모티브는 “좀 과장되게 해석하면 요즘 세대에 대한 은유”(이후남 기자)로 보이기도 한다. 이 세대는 어린 시절 비교적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해도 지금은 취업도, 연애도 힘든 처지다. 극 중 유복했던 혜진네는 10년 전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가세가 기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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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의 흐름과 함께 혜진의 외모와 차림새는 달라진다. 하지만 선배 신혁은 진작부터, 성준 역시 혜진의 실체를 깨닫기 전부터 그 매력에 끌렸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 같은 극단적 변화가 아닌 데다, 외모로 승부하거나 외모가 달라져 사랑이 돌아온 게 아니라는 점”(이지영 기자)은 큰 공감의 요소다. 반면 “두 남자가 동시에 혜진을 좋아하는 건 지나친 변화, 진부한 설정”(이후남 기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로맨틱 코미디의 핵심”이고 “그 두 남자를 너무도 다르게 만들어 놓은 게 이 드라마의 ‘신의 한 수’”(이은선 기자)라는 반론이 만만찮다. 그보다는 “가족관계의 트라우마를 남발하는 것이 오히려 진부하다”(이은선 기자)는 지적이다. 어머니를 사고로 잃은 성준, 아버지의 재혼에 상처받은 하리 등이 그 예다.

 이 드라마는 일과 사랑만 아니라 혜진과 하리의 진한 우정도 중요한 소재다. “여주인공과 또 다른 여주인공의 관계가 경쟁으로만 그려지지 않는 것”(이은선 기자)은 제법 신선한 구도다. 이 드라마는 사실 누구 하나 악역이 없다. “그래서 더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다”(이지영 기자). 헌데 지난 11회에서 흐름이 달라졌다. 그동안 긴장을 고조시키던 비밀을 주요 인물 모두 알게 됐다. “마지막회쯤에 나올 법한 얘기를 미리 해버려 재미가 크게 줄었다”(이지영 기자)는 지적이다. 그래도 기대감은 남는다. “연극 대본에 총이 등장하면 무조건 발사되야 한다는 원칙처럼”(이은선 기자) 이 드라마는 미리 뿌려놓은 크고 작은 디테일을 성의껏 수습해왔기 때문이다.

정리=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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