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사 계획 없어도 "자리부터 잡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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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위성 전쟁 시대다. 특히 한.중.일 3국 간에 벌어질 한반도 상공의 '하늘 명당'확보전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일본 등 주변국들도 위성 발사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정지궤도 위성의 자리는 포화 상태이기 때문이다.

◆ 한.중.일'스타워즈'=정통부 산하 전파연구소는 최근'2005년도 위성망 조정회의'추진 계획안을 마련했다. 이 안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무궁화5호(2006년 발사 예정)와 통신해양기상위성(2008년)용 정지궤도의 위치를 포함,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신청한 50여 개 위성 자리를 최대한 확보키로 했다. 이를 위해 정통부는 이달 말 중국을 시작으로 올해 일본.베트남.러시아 등 주변 4개국과 양자협상을 진행한다. 한.중 회의에는 정부.연구소 및 관련 기업 관계자로 구성된 대규모 협상단이 나서 우리가 신청한 위성 자리를 상대방에 이해시킨다는 전략이다. 유 단장은 "주변국이 한반도 상공에 위성을 발사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과의 협상은 물론 하반기에 열릴 일본이나 베트남.러시아 등과의 협상에서도 우리 입장을 얼마나 관철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국전파진흥협회 관계자는 "한반도 상공의 위성 자리를 놓고 벌이는 협상인 만큼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와 주변국이 원하는 위성 자리는 대부분 위성 전파가 동북아시아 전체에 미치기 때문에 국경없는 방송.통신시대를 맞아 더 경쟁이 치열하다는 설명이다.

◆ 지구촌은 '위성 전쟁'=1990년대 들어 세계 각국은 앞다퉈 통신.방송위성을 발사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우주선 발사기지인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공군기지에는 세계 각국의 위성들이 우주공간으로 날아가기 위해 줄지어 서 있을 정도다.

정지궤도 위성은 상업적 가치가 높아 통신.방송용으로 수요가 많다. 정지궤도 위성은 세계적으로 이미 338개에 달해 적정치(180개)를 넘었고, 앞으로 위성을 추가로 띄우려는 각국의 경쟁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특히 최근엔 하나의 위성을 띄우면서도 위성 주파수는 여러 개를 신청해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전파연구소 양왕렬 연구원은 "위성 하나에 탑재체가 여러 개 달려 사용할 주파수 대역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통신해양기상위성은 통신.해양.기상용 전파 송수신기가 각각 장착되고, 주파수도 개별적으로 필요하다.

국내 통신업계 관계자는 "90년대 중반 뒤늦게 자체 위성 확보에 뛰어든 우리나라의 입장에선 우리 영공이라 할 수 있는 한반도 상공의 위성 자리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며 "중국.일본 등 주변국은 물론 러시아.베트남.미국.프랑스.영국.인도까지 나서 한반도 상공 위성 자리의 소유권을 주장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 위성궤도 등록 절차=특정 국가가 위성을 쏘려면 우선 위치와 전파 방향 및 전파가 미치는 영역을 상세히 담은 신청서를 ITU에 제출해야 한다. 이 신청서는 국제적으로 공고되고, 다른 나라의 이의 제기를 받게 된다. 당사국은 이해관계가 얽힌 주변국들과 양자협상을 벌여야 한다. 전파연구소 양 연구원은 "양자 간 합의가 이뤄지면 ITU는 해당국 이름으로 위성궤도와 주파수를 등록해준다"고 설명했다.

조정 협상에 진척이 없으면 ITU가 위성 자리를 먼저 신청한 국가에 기득권을 주거나 무리한 이의신청이라고 판단할 때에는 직권으로 기각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해 신청에서 등록까지 5년 가까이 걸리고, 조정 중에 포기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중국과의 협상단 일원으로 참가할 전파연구소 성향숙 박사는 "위성 서비스 영역이 한 국가에 머물지 않고 인근 국가까지 넓어지면서 위치를 조정하는 협상도 갈수록 치열해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심지어 세계 각국은 당장 위성을 발사할 계획이 없어도 자국의 영공을 지킨다는 차원에서 하늘 명당 잡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성 박사는 전했다.

이원호.이희성.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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