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예술을 찾아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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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사들이 단 5분만이라도 내가 처한 상황을 심사숙고하고 그들의 진심 어린 배려를 받고 그들과 내가 교감하고 나의 신체적 어려움만이 아니라 정신도 위로 받고 싶었다.

이런 것들이 없다면 나는 그저 하나의 질병에 지나지 않는다."수필가인 아나톨 브로야드가 전립선암으로 사망하기 직전에 쓴 글중 일부다. 한국 인이라면 이런 심정에 1백% 동조하지 않을까 싶다.

환자가 들어가도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 않은 채 몇 마디말조차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이런 저런 검사부터 받아보라는 의사의 모습에 '병 떼러 갔다가 병 얻어오는' 불쾌감을 느낀 이들이 한 둘일까. 현행 의료보험제도 시스템에서 시간이 곧 돈이긴 하지만 청진기 한 번 제대로 되지 않는 의사와 환자의 기계적인 모습에서 현대 의학의 황폐함을 보게된다.

이 책 (원제 The Lost Art of Healing)은 현대의학이 인간중심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미국의 권위있는 심장병 의사로서 핵전쟁방지국제의사회의 창립 회원이기도 하다. 그는 1985년 이 단체의 대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저자는 20세기 중반만해도 의사가 다른 어떤 전문인들보다 존경을 받았지만 의학이 과거 어느 때보다 발전한 지금 의사의 지위는 하락하고 퇴색했다고 탄식한다.그가 45년간 의사 생활을 하며 얻은 느낌은 의술이 매우 중요한 무엇인가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의술이 상업화되면서 치유(healing)는 처치(treating)로 대체되고, 치료(caring) 대신 관리(managing)가 중요해졌다. 환자의 말에 귀기울이던 의사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의료장비가 대신했다. 환자나 그 가족과 상담하는 시간에 수술이나 복잡한 시술을 하면 열배 이상의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 의사들이 과학과 장비를 너무 맹신한다고 비판한다. 치유를 위해서는 예술과 과학이 동시에 필요하며 신체와 정신을 함께 살펴야한다. 고통과 두려움에 싸인 한 인간 존재의 운명을 깊이 생각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윤이나 경제적인 이유, 상황논리만 앞세운 결과 환자들로부터 얼마나 분노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 일부 의사들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의사와 의사 지망생, 의료정책을 세우는 이들의 필독서일 뿐 아니라 일반인은 의사와 병원에 무엇을 요구해야하는 지, 그 권리를 재확인하는 면에서도 읽을만하다.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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