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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상있을때 치료하라고? 항의하고 싶다는 환자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지난 10월 8일 오후 외래 진료실, 후덕한 60대 초반 아주머니 환자다. 필지와 인연을 맺은지 11년이 좀 넘는다. 갑상선암 때문에 11년 내내 고생을 많이 한 분이다.

"어이구, 어서 오세요. 어째 얼굴이 좀 부어 보이네요. 숨차신 것은 좀 어떠시고?"

"요즘 와서 숨이 더 차요. 평지 걸을 때는 좀 괜찮다가 쪼끔 오르막이거나 오래 걸으면 숨이 차서 힘들어요"

"네 그러실 겁니다. 얼마 전에 찍은 폐CT사진에서 폐로 전이된 암이 좀더 진행 된 것으로 나왔어요.

그동안 그렇게 많은 고용량 방사성 요드치료를 했는데도 반응이 없는 걸로 봐서 이제는 항암제 치료를 시도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넥사바(nexabar, Sorafeniv Tosylate)라고 먹는 알약으로 하루 두번 복용하면 되지요 , 이제 보험 혜택을 받게되어서 한번 해볼만하다고 생각됩니다.

그전에는 비용이 많이 들고 효과도 100% 있는 것이 아니어서 적극적으로 권유를 못했는데 이제는 비용걱정은 덜하게 되었어요"

"저는 항암치료는 안 받고 싶어요. 너무 고생스럽다고 해서요. 이렇게 지내다가 가야지요 뭐"

"부작용은 좀 있지만 잘 견디는 사람은 잘 견디더라구요. 얼마전 중년 남자분인데 폐, 콩팥, 뼈 등 전신에 다 퍼져 어쩔 도리가 없다고 생각 했는데

지금 넥사바 치료중인데 믿지 못할 정도로 거의 없어 졌어요. 피부발적같은 부작용이 좀 있기는 해도 환자분이 잘 견디더라구요"

"아이, 그래도 저는 안 받고 싶어요..저 시골에서 혼자 살거든요."

이때 옆에 있던 아드님이 엄마를 설득한다.

"엄마, 치료 받아 보도록 해요"

"그래요, 부작용이 심하거나 약이 안들면 그때가서 중단하면 되지요"

한참을 설득 끝에 환자가 겨우 긍정적인 마음으로 돌아서는 것 같았다. 마음 변하기전에 결정하려고 당장 항암 치료담당인 닥터 김을 내려 오게 한다.

이 후덕한 아주머니 환자분을 처음 진찰 한 것은 2004년 6월4일이었다.

목소리가 변하고 목에 뭐가 걸린는 것 같아서 병원을 찾았는데, 아뿔사, 암이 많이 퍼진 상태였던 것이다.

왼쪽 갑상선 날개에 4cm가 넘는 암덩어리가 있고, 이것이 왼쪽 식도벽과 왼쪽 성대신경을 망가뜨리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기서 오른쪽 갑상선으로 퍼져 있으면서(3cm, 0.7cm 크기), 중앙 림프절과 양쪽 옆목 림프절들에 자갈밭을 일구고 있었고. 퍼져도 너무 많이 퍼졌다. 일반적으로 환자가 증상을 느낄 정도가 되면 이렇게 많이 퍼져 있는 것이다. 근데 뭐? 증상이 있을 때만 진단하고 치료 하라고?

환자는 2004년 11월8일 갑상선전절제술, 중앙경부림프절 청소술, 양측 옆목림프절 청소술을 받고 , 고용량 방사선 요드치룔를 세차레나 받았다.

근데 수술후 잘 나가다가 3년이 지난 어느날 왼쪽 옆목에 또 전이 림프절이 발견돼 2007년 9월10일에 또 제거수술을 받고 또 고용량(150mCi)의 방사성요드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후 2년이 지날 즈음 이번에는 상부종격동 근처에 또 재발 림프절이 발견돼 2007년 9월10일에 또 수술 받고, 또 고용량 요드치료(180mCi)를 받고....에휴....잘 나가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저번 수술부위보다 더 아랫쪽인 왼쪽 상부 종격동(level 7)에 또 재발 림프절이 발견되어 2012년 3월2일에 또 제거 수술을 받고....이쯤되면 환자도 지치고 주치의도 지칠만 한데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환자와 주치의가 한편이 되어 암과 싸움을 계속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혈청 Tg(thyroglobulin)수치가 100ng/ml이상으로 뛰어 2013년 9월에 PET-CT를 찍어 보니 오~, 맙소사, 양쪽 폐에 다발성 전이소견이 보이지 않는가....하느님, 왜 이러십니까? 이 착한 사람에게 왜 이러 십니까?

이젠 환자 얼굴 보기도 미안하고...꼭 내가 죄를 짓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200mCi의 고용량 방사성 요드를 투여하고,6개월 후에 또 180mCi 추가하고, 추적 Tg를 체크해보니 Tg는 136ng/ml 로 그 자리에 있고, 폐전이도 호전없이 그대로라. 즉 이젠 방사성요드치료에 저항하는 암으로 변한 것이다(intractable cancer).

이런 경우 대안은 마지막으로 시도해 보는 요드치료에 저항하는 암에 다소간의 효과를 보이는 넥사바 항암제 치료인 것이다.

넥사바는 종양세포증식과 암세포 주변의 혈관증식을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효과를 보이는 약제다.

근데 투여받은 환자는 100% 효과를 보지 못하고 41% 정도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되어 있다.

과거 같으면 요드치료에 저항하는 갑상선은 손을 놓고 관찰만 하는 수 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넥사바라는 항암 무기가있어 좀 위안 된다.

나아가 최근에는 넥사바보다 더 효과가 있다는 "렌비마"가 한국에도 상륙하여 식약처에서 갑상선암에 사용할 수 있다고 허가가 났다고 한다.

의료 보험 적용은 좀 더 기다려 봐야 할 것이다.

어쨋거나 절망적이라고 생각되었던 환자에게 희미한 희망의 빛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느리게 퍼지는 갑상선암이라 할 지라도 조기에 발견되어 작은 수술로 없애버려 신지로이드 같은 약도 필요없게 하는 것이다. 초전 박살인 것이다.

오늘 환자분이 말한다.

"갑상선암은 증상이 있을 때 진단하고 치료해도 된다는 사람에게 항의하고 싶어요.실지로 그런 말 하는 의사에게 항의해서 사과를 받아 내기도 했어요"

"맞아요, 항의 해야죠. 증상이 있을 때 발견하고 치료하면 고행길로 들어서는 것이죠.

얼마후에 신문사기자와 이런 문제에 대하여 인터뷰를 하게 되어 있어요. 그때 환자분에게 연락할 테니까 오셔서 말씀 좀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럼요, 올라 올게요, 갑상선암은 일찍 발견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사람에게 경종을 우리고 싶어요"

그렇다. 조기발견이 문제가 될 수는 없지. 작은 암에 큰 수술, 큰 비용이 드는 과잉치료가 문제 인 것이지....

"작을 때 발견되면 작은 수술로 고친다" 이게 정답인 것이지...........


☞박정수 교수는...
세브란스병원 외과학 교실 조교수로 근무하다 미국 양대 암 전문 병원인 MD 앤드슨 암병원과 뉴욕의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갑상선암을 포함한 두경부암에 대한 연수를 받고 1982년 말에 귀국했다. 국내 최초 갑상선암 전문 외과의사로 수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초대 갑상선학회 회장으로 선출돼 학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바 있다. 대한두경부종양학회장,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아시아내분비외과학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국내 갑상선암수술을 가장 많이 한 교수로 알려져 있다. 현재 퇴직 후에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주당 20여건의 수술을 집도하고 있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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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기자 sohopeacock@naver.com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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