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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동' 밝히는 사람, 기억력 뚝뚝 떨어진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직장인 이모(35)씨는 요즘 유독 피곤함을 느낀다. 집중력이 떨어져 일도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과로 때문이 아니다. 밤마다 부인 몰래 은밀하게 즐기는 ‘야동(야한 동영상·음란물)’ 탓이다. 밤마다 부인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가 몰래 일어나는 일도 잦다.

그의 노트북과 스마트폰에는 수백 개의 동영상과 수십 개의 음란사이트가 저장돼 있다. 그러다 보니 취침시간은 오전 2~3시를 넘기기 일쑤다. 부부관계도 소원해졌다. 다시는 보지 않겠노라며 다짐하지만 다음날이면 다시 야동을 찾는다. 그는 “이젠 (야동이) 스트레스를 푸는 유일한 방법이 됐다”고 했다.


음란물의 위협이 커지고 있다. 노출 경로가 간소화되고 다양해져서다. 최근 ‘개리 동영상’과 ‘워터파크 몰카’라는 이름의 영상이 세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남녀 성행위 장면과 여성의 나체를 담은 영상이다. 이 영상은 SNS를 타고 순식간에 퍼졌다.

음란물은 이제 시·공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나 접할 수 있고, 원치 않아도 접하게 되는 존재가 됐다. 전문가들은 음란물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음란물 중독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강조한다. 특히 “음란물 중독이 뇌 기능을 망가뜨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도 중독 현상

음란물 중독은 청소년의 문제로 여겨졌다. 성인물을 ’19금’으로 연령을 제한하는 이유다. 하지만 성인도 음란물 중독으로 인한 피해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다.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신영철 소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어떤 중독이든 중독되는 대상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면 중독성도 높아진다”며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자극을 받으면 중독으로 연결되기 쉽다. 이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음란물 중독으로 인한 폐해는 발기부전이나 섹스리스(Sexless) 등 주로 성적인 부분이 주로 부각됐다. 더 큰 위험성은 음란물 중독이 뇌를 공격한다는 점이다.

우선 기억력을 떨어뜨린다. 독일 뒤스부르그-에센 대학교(Universitat Duisburg-Essen) 연구진의 연구결과(2012년)는 음란물과 기억력의 상관관계를 잘 말해준다.

연구진은 평균연령 26세 독일 성인 남성 28명을 대상으로 음란물이 기억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연구진은 먼저 실험 참가자에게 성적인 사진이 섞인 이미지와 그렇지 않은 이미지들을 하나씩 번갈아 가면서 반복해서 컴퓨터 화면으로 보여줬다. 그리고 앞서 본 사진을 기억하는지 여부를 확인했다.

그 결과, 성적인 사진을 보고 난 뒤에는 다른 사진을 보고 난 후보다 기억의 정확도가 떨어졌다. 성적인 것과 상관없는 사진을 본 후에는 정확도가 80%에 달했다. 하지만 성적인 사진을 본 뒤에는 기억 정확도가 67%에 불과했다. 연구진은 “음란물이 뇌의 기억력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원은수 교수는 “음란물 같은 자극적인 영상을 자주 보면 뇌에서 도파민이 과하게 분비되고,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결과적으로 도파민 수용체 숫자가 줄어 뇌 기능에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출 시간 늘어날수록 뇌 크기 줄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기억력뿐만이 아니다. 뇌에서 자극과 보상체계를 담당하는 영역의 부피를 쪼그라뜨린다는 점이다. 뇌 일부가 작아진다는 얘기다.

독일 막스플랑크 인간개발연구소(Max Planck Institute for Human Development)는 지난해 21~45세 성인 남성 64명을 대상으로 음란물 시청에 따른 뇌 용량 변화를 조사해 그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 참가자들의 음란물 노출 정도와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 뇌 영상을 분석했다. 참가자들의 평균적인 음란물 노출 시간은 일주일에 4시간 정도였다.

분석 결과, 음란물을 보는 시간과 뇌 선조체의 일부분인 뇌 회백질 부피가 반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음란물을 많이 보는 사람일수록 뇌 회백질 부피가 작다는 것이다.

특히 뇌 미상핵과 전전두엽 사이의 연결 정도도 음란물 노출 시간이 많을수록 약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선조체는 행동과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영역을 말한다. 미상핵은 뇌 발달과 함께 커지는 부위로 뇌의 보상회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다. 뇌 보상회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일상적인 자극으로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

원 교수는 “이 연구결과는 음란물 중독이 뇌의 보상회로 안에서 서로 같이 상호작용 하는 체계 자체에 이상을 가져왔다는 것”이라며 “그만큼 음란물로 인해 정상적인 뇌의 기능이 떨어진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결과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음란물 중독이 삶의 만족도 자체를 떨어뜨리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신영철 소장은 “음란물은 그 자체보다 중독되는 것이 문제”라며 “자극적인 음란물에 노출되고 중독되면 일상의 자극에 둔감해지게 된다”고 말했다. 일상적인 자극으로는 만족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원 교수는 “마약 중독자의 경우 손자가 재롱을 부려도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중독은 그만큼 무서운 것”이라며 “마찬가지로 음란물도 성욕에만 국한하지 않고 모든 영역에서 보상을 받는 느낌을 떨어뜨리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워낙 강하게 자극하는 요소가 있다 보니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자극은 상대적으로 약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음란물 노출 환경 피하는 것이 최선

음란물 중독도 다른 중독과 마찬가지로 치료가 쉽진 않다. 워낙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행위다 보니 본인 스스로 치료에 나서기 전에 치료가 이뤄지지도 않는다. 치료의 동기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가장 먼저 음란물에 노출되는 환경에 놓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성상 혼자 즐기는 행위인 만큼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중독치료 기관이나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상담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중독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치료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약물치료나 호르몬 치료, 인지행동 치료를 하기도 한다. 신 소장은 “음란물 중독에서 적정선은 없다. 무조건 끊는 것이 중요하다”며 “음란물에 노출되는 것을 차단하는 환경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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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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