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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TPP 전략, 신뢰할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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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상렬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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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렬
뉴욕 특파원

전 세계적으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정국이 펼쳐지고 있다. TPP의 골격은 미국과 일본의 경제동맹이다. 두 나라가 주도했고, 지분도 제일 많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참가 12개국 중 특히 눈이 가는 곳은 베트남과 말레이시아다. 미·일 양국이 TPP의 최대 수혜국이라지만 이 두 나라가 얻는 이익도 만만찮다. 두 나라는 중국을 대신해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할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됐다. 관세와 비관세 장벽이 없는 세계 최대 시장을 노리는 기업들은 생산 거점을 이들 두 나라로 옮기고 싶은 유혹을 강하게 받을 것이다. 최저임금과 작업장 안전 보장 등 까다로운 노동 규정은 당장엔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잘만 하면 글로벌 스탠더드를 경제 전반에 확산시키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특히 중국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베트남에 TPP는 중국을 견제하는 울타리 효과를 낼 것이다. TPP를 무역협정을 넘어서는 국가전략으로 봐야 하는 사례다.

 이상한 것은 우리 정부 반응이다. 경제부총리가 “TPP에 참여하는 쪽으로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농림부 장관은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산자부 장관은 아예 “한·일FTA를 대체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공론화 과정을 거쳐 (참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방향을 돌렸다. 부처별 입장이 춤을 춘다.

 TPP는 벼락처럼 하루 아침에 떨어진 것이 아니다. 최초 시작이 2005년, 미국의 참여가 2008년, 일본의 가세가 2013년이다.

 그 10년간 우리 정부는 입장 정리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일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정부 설명의 타당성이다.

 정부는 TPP 참가국 중 10개국과 양자 FTA를 맺었기 때문에 TPP에 빠지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고 설명해 왔다. 하지만 많은 나라와 FTA를 하다 보니 원산지 규정과 통관절차 등이 달라서 FTA 효과가 반감되고, 그래서 나온 것이 TPP 같은 메가 FTA다. 그런데 정부는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는 열심히 참여했다. 더구나 한국은 RCEP 참가 16개국 중 일본을 제외한 모든 나라와 FTA를 체결했다. 정부 설명은 군색하기만 하다.

타이밍을 놓쳤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정부는 추가 가입론을 내놓았다. 타결 후 각국 비준까지 1년 이상 걸리는 만큼 그 기간에 가입하면 된다는 얘기다. 시행 중인 한·미 FTA가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협정인 만큼 후발 가입으로 인한 추가 비용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과연 그럴까. 한국은 이미 타결된 협상에 새로 끼워 달라고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한국은 어떻게 희망 사항을 반영할 것이며, 그들의 요구를 어떻게 거절할 것인가. 이미 미국 조야에선 한국에 적용되는 진입장벽이 높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가전략에는 합당한 논리와 충분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신뢰하고 따를 수 있다. TPP에 참여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논리도 설명도 미흡하다는 점이 불안하다.

이상렬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