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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 한·일 정상이 결단 내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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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오영환
오영환 기자 중앙일보 지역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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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환
도쿄총국장

16일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의 숨은 의제는 한·일 관계일지 모른다. 한·미 전략동맹과 북핵 공조 강화엔 이견이 없을 듯하다. 양자 차원의 한·미 관계는 강고하다. 하지만 미국은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큰 틀에서 한·미 관계를 조망할 수도 있다. 미국은 최근 대일 관계에서 두 가지의 큰 소득을 얻었다. 하나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포함된 안보법 성립이다. 일본의 적극적 안보 공헌은 미국의 숙원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원칙적 타결이다. 무역과 투자 규범을 새로 쓰는 TPP는 미·일 주도의 아태 질서와도 맞물려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지 않는 것을 생각해 보라.

 미국은 이제 한·미·일 협력 복원에 더 박차를 가할 수 있다. 한국·일본과 동맹인 미국에 한·일 관계 개선은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지난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중개한 한·미·일 정상회담은 3국 간 끊어진 고리를 잇기 위한 노력의 하나다. 미국이 1951년 이래 14년간의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에서 늘 쏘시개 역을 했던 점을 떠올리게 한다. 한·일 관계는 미국의 입장을 떠나 그 자체로 소중하다. 자유·민주주의·인권의 기본 이념을 공유하는 이웃이다. 상호 교류·협력은 동아시아 번영과 평화의 초석이 됐다. 국교 정상화 반세기가 이를 입증한다.

 한·일 관계가 다시 분수령을 맞는다. 이달 말께 서울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위안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한·일 양자 정상회담을 통해 분위기를 반전시키지 못하면 관계 개선의 모멘텀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한국은 내년 4월 총선을, 일본은 7월 참의원 선거를 치른다. 해를 넘기면 여론에 민감한 이슈에 대한 합의가 어렵다. 마침 한·일 간에는 가시 같은 현안도 없다. 박근혜 정부는 임기 반환점을 돌았고, 아베 신조 총리도 3차 내각을 출범시켰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관료 차원에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일본의 책임 인정·사죄·보상 방식을 둘러싼 합의는 양국 정상의 결단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발 비켜서 보면 정의(正義)·도덕 차원의 접근과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다는 법적 접근이 충돌하고 있다. 관료에 맡기자는 얘기는 합의하지 말자는 것과 같다. 어느 외교관이, 관료 조직이 외줄타기에 나서겠는가. 가뜩이나 한·일 외교 채널 간 신뢰도는 바닥이다.

 결국은 양국 정상이 풀 수밖에 없다. 결단은 지도자의 몫이다. 그 바탕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존엄 회복과 오욕의 기억 치유가 돼야 한다. 상대방이 있는 외교는 100%의 완승(完勝)이 없는 세계다. 합의문 해석이 서로 다를 수도 있다. 부족분은 지도자가 정치력과 새로운 비전으로 메워야 한다. 50년 전 한·일 국교정상화는 그렇게 이뤄졌다. 한·일 관계는 너무 오래 감정이 전략을 지배했다. 현해탄을 대립과 불신의 해협에서 상생의 일의대수(一衣帶水)로 되돌릴 때가 됐다.

오영환 도쿄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