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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꿈틀대는 소비 … 내수 경기 살아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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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첫 주말 롯데·현대·신세계 등 주요 백화점 매출이 최대 37% 늘었다. 4일 서울 중구 소공로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고객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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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내수 진작을 위해 꺼내 든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가 일단 초반 흥행에는 성공했다. 주요 소비업종의 올해 추석 매출도 지난해보다 큰 폭으로 올랐다. 이를 두고 정부는 정책 효과가 조금씩 나타나며 소비심리가 살아나고 있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는 중국 관광객 특수, 세월호 참사 후 기저 효과, 알뜰 소비 확산 등을 이유로 내수 경기 회복이라고 보기엔 이르다고 반박한다.

추석 매출, 작년보다 늘고
블랙프라이데이 초반 흥행
지갑 열어도 알뜰소비 뚜렷
장밋빛 전망은 아직 일러

 4일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블랙프라이데이 행사 첫 주말인 1~3일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6% 증가했다. 구두가 62.8% 늘어난 것을 비롯해 핸드백(42.1%), 아웃도어(28.8%) 등의 증가 폭이 컸다. 신동빈(60) 롯데그룹 회장은 이날 백화점과 마트·면세점에 “자체 유통마진을 줄여서라도 좋은 제품이 소비자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라”며 행사를 챙겼다.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도 같은 기간 매출이 전년 대비 각각 27.6%, 36.7% 늘었다. 특히 패션 부문과 보석·시계 등이 선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날 기획재정부가 추석 경기를 모니터링한 결과(지난해 8월 18일~9월 10일과 올해 9월 7~29일 매출 비교)에 따르면 올해 추석 대목에 편의점 매출액은 52.3% 뛰었고 백화점과 대형마트 판매액도 10.9%, 6.7% 각각 늘었다. 온라인쇼핑몰(14.2%), 아웃렛(13.8%), 농축산물 전문 매장(11.4%) 판매도 함께 증가했다. 개별소비세 인하(8월 27일) 직후인 지난달 국산 자동차 판매량도 1년 전에 비해 15.5% 늘었다.

 그동안 소비심리에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평가와 다른 흐름이다. 또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가 정부에서 홍보하는 ‘최대 80% 할인’과 달리 할인 폭이 대부분 30~50% 이하이고, 품목도 제한적이라는 이유로 ‘무늬만 세일’이란 비판을 받은 점을 고려하면 나름 선전한 셈이다.

 이찬우 기재부 경제정책국장은 “코리아 그랜드세일, 개별소비세 인하에 따라 각종 할인행사가 이어지면서 국내 소비심리가 회복됐다”며 “정책 효과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 시각은 좀 더 신중하다. 내수 경기 회복을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분석이다. 블랙프라이데이의 경우 중국의 최대 명절인 국경절 연휴(10월 1~7일)를 맞아 한국을 찾은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 특수가 백화점 매출에 더 큰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1~3일 롯데 본점의 중국인 매출은 전년 대비 76.2% 늘었다.

 재래시장의 경우 사전 준비 및 홍보 부족으로 블랙프라이데이 효과를 거의 보지 못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시장 관계자는 “추석 명절 이후 손님이 크게 줄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라며 “상인 대부분이 블랙프라이데이가 뭔지도 잘 모르는데 갑자기 (중소기업청에서) 예산 지원 신청을 하고 할인을 하라고 하니 사실상 준비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정호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비는 특성상 할인이나 세제 혜택에 민감해 미리 당겨 소비하거나 이전에 소비할 걸 미뤘다 쓰는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며 “추석 같은 특정 기간을 비교할 게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통계를 비교해 봐야 내수 경기가 살아나고 있는지 아닌지를 제대로 알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와 올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산 같은 소비 충격이 잇따랐다는 점에서 ‘기저 효과(비교 대상 수치가 너무 낮아 현 수치가 좋게 보이는 통계 착시)’도 배제할 수 없다.

 지갑을 열되 돈을 아끼는 ‘알뜰 소비’ 양상도 뚜렷하다. 추석 대목 매출 증가율에서 할인 폭이 큰 온라인쇼핑과 아웃렛이 백화점과 대형마트를 앞섰다. 추석 연휴 입장객이 특히 많이 몰린 곳도 상설전시관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이었다.

 내수 통계를 두고 ‘일본형 불황’의 조짐을 읽는 시각도 있다. 올 추석에 매출이 가장 많이 늘어난 업종은 편의점이었다. 담뱃값 인상과 편의점 창업이 늘어난 데 따른 매장 수 증가 영향이 컸다. 양지혜 KB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편의점은 한 끼를 싼 가격에 때울 수 있는 도시락, 컵라면 같은 간편식을 주로 팔고 있는데 1인 가구, 고령 인구 증가와 불황이 겹쳤던 일본에서 편의점 업태가 크게 성장했던 전례가 있다”며 “한국 유통업계에서도 비슷한 구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세종=조현숙 기자, 이소아 기자newear@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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