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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정담(政談)] 박근혜·반기문 연대설, 당·청 갈등 숨은 화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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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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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박용석 기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주식으로 치면 비상장 장외 종목이다. 아직은 상장될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그런 ‘반기문 주’가 요즘 정치시장에서 소리 없이 상승 국면을 타고 있다. 국정감사차 지난달 뉴욕을 방문해 반 총장을 만나고 돌아온 여야 국회의원들이 “반기문이 달라졌다”는 말을 앞다퉈 전하고 있어서다.

지난달 천안문·뉴욕서 잇단 회동
새마을운동엔 완전히 의기투합

의원들 “반 총장 권력의지 보여”
친박계서 대선후보 영입론 확산

청와대와 틈 벌어진 김무성 측
“대통령·유엔총장은 달라” 경계

 “전보다 훨씬 정력적이었다. 얼굴도 많이 좋아졌고 일에도 탄력이 붙은 듯했다.”(새누리당 정병국 의원)

 “원래 말씀을 아주 조심하는 분인데 이번에는 좀 다르게 느껴졌다. 자신에 찬 어조였다.”(새정치민주연합 신경민 의원)

 지난달 15일(현지시간) 뉴욕 총영사관에 대한 국정감사를 마친 나경원(새누리당) 위원장 등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의원 9명은 반 총장과 30분간 티타임을 가졌다. “한국의 국제사회 기여도를 높여야 한다”는 반 총장의 메시지는 평이했지만 태도는 전과 달랐다고 한다. 익명을 요청한 새누리당 의원은 “과거엔 소탈한 모습뿐이었는데 이젠 자신감이 많이 붙었고 권력의지까지 읽히더라”고 말했다.

 ‘달라진 반기문’과 더불어 주가를 올리는 또 하나의 호재가 ‘박근혜(Park)-반기문(Ban)의 PB 연대’설이다.

 지난달 25~28일, 3박4일간의 유엔 일정 중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은 7번이나 만났다. 하루 두 번꼴로 만난 두 사람의 동선, 새마을운동과 북핵에 한목소리를 낸 두 사람의 2인3각 행보 때문이다. 특히 “(뉴욕) 맨해튼 중심에서 새마을운동이 진행되고 있다”는 반 총장의 연설에 박 대통령이 뜨겁게 박수를 치는 장면이 하이라이트였다.

 두 사람은 지난달 2일 중국 베이징(北京)의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서도 나란히 섰다. 천안문 성루에서 박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오른쪽 둘째에, 반 총장은 오른쪽 다섯째에 섰다. 유엔을 대표하는 반 총장이 특정 국가의 열병식 참석을 강행한 데 대해 여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혼자 천안문 성루에 서기보다 유엔 수장인 반 총장과 함께 서기를 원했다”며 “청와대가 반 총장 측에 열병식 참석을 간곡하게 부탁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두 사람의 관계를 보는 시선도 점점 진화하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한 ‘우호관계’에서 ‘연대설’로, 거기서 다시 ‘친박 진영이 결국 반 총장을 김무성 대표의 대항마로 내세울 것’이라는 정치가설로 번지는 중이다. 지난해 10월 “반 총장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친박계 의원들의 발언 등 ‘반기문 대망론’이 정치권을 달군 적이 있다. 그 대망론은 ‘반기문 대통령 만들기’를 꿈꿨던 성완종 전 의원의 죽음으로 힘이 빠지는 듯했다. 하지만 반 총장은 지난달 23~24일 실시된 SBS의 여론조사에서 21.1%의 지지율로 김 대표(14.1%)와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11.2%)를 앞섰다.

 박근혜·반기문 연대설은 청와대와 김 대표 간의 공천룰 전쟁과 맞물려 더욱 주목받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김 대표가 청와대의 공세에 예민하게 반응한 것은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의 연대설을 의식한 측면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선지 김 대표와 가까운 의원들은 반 총장 얘기만 나오면 “한국 사회의 복잡한 갈등을 조율해야 하는 대통령직과 유엔 총장 자리는 다르다”며 평가절하한다. 반면 친박계 의원들은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 박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후보가 없을 경우 반 총장이 친박계의 대표 주자가 될 수도 있다”고 여운을 둔다. 박·반 연대설은 그래서 김 대표와 청와대 사이에 놓인 숨어 있는 화약고다.

서승욱·위문희 기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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