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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반가사유상, 반만 남아 더 신비롭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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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50년 만에 공개된 ‘가장 큰 반가사유상’, 11년 만에 모인 ‘국보 78호상’과 ‘국보 83호상’, 2세기 초 중국 마투라 지역의 ‘소라 모양 육계의 부처’, 6~7세기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되는 ‘삼존불’.(순서대로). [사진=정재숙 문화전문기자,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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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빛을 품은 듯 부처님 미소가 환하게 퍼진다. 어둑한 적막 속에 환희심이 번져나간다. 7개 나라에서 온 불상(佛像) 200여 점이 모여 있으니 극락정토가 여기인 듯싶다. 기원전 100년부터 기원후 700년까지 유물들로 대략 2000년 세월을 거슬러 우리 곁에 왔다. 불심(佛心)의 공간이다. 예술과 신앙이 겹쳐진 이심전심으로 관람객은 잠시 삼매경 너머로 빠져든다.

국립중앙박물관 ‘고대불교조각…’
7개국 걸작 200점 보기드문 전시
인도·중국 등과 교류 전통 정리
나란히 가부좌 튼 국보 78·83호
특수조명으로 빛 따라 다른 미소

 24일 오전 서울 서빙고로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은 고대 불상의 걸작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꽃자리가 되었다. ‘고대불교조각대전-불상, 간다라에서 서라벌까지’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 이전 10주년을 기려 마련한 특별전이다. 1990년 ‘삼국시대 불교조각’, 2008년 ‘영원한 생명의 울림, 통일신라 조각’에 이어 고대 불교조각을 정리하는 세 번째 순서다. 이번 전시에서는 인도·중국·베트남·일본과의 교류 속에서 한국만의 미감과 양식을 닦아온 전통을 정리했다. 아시아 지역 불상을 한자리에서 비교 감상할 수 있는 규모로는 역대 최고를 자랑한다.

 불상은 어디서, 왜 태어났을까. 1부 ‘인도의 불상-오랜 역사의 시작’이 실마리를 풀어준다. 석가모니 열반 후 그의 유골이 여러 부족에게 나눠져 모셔진 ‘스투파’ 제단이 숭배의 대상이었다가 부처를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한 불상이 그 대체물로 떠오르게 됐다는 설이다. 인도 간다라와 마투라가 초기 불상의 탄생지로 꼽힌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부처의 형상을 만든 공력을 ‘설법하는 부처’ ‘소라 모양 육계의 부처’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국에서 불상은 2~3세기 경 무덤 부장품으로 처음 발견된다. 이후 불상은 일상생활에 스며들어 중국인들의 삶과 의례에 밀접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처음에 불상은 예배의 대상이라기보다 도교적인 선인이나 신선(神仙)과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허상인 줄 알면서도 허망한 인생을 이겨낼 믿음을 담아 지역 문화에 맞게 양식을 변형하는 중국화 경향이 강했다.

 한국은 삼국시대에 중국 남·북조와의 관계 속에서 불상을 받아들인다. 우리 입맛과 미감에 맞게, 한국인의 눈에 익숙한 형상으로 변주된 불상은 나름의 철학을 지니게 된다. 부처의 가르침을 널리 퍼뜨리고 공덕을 쌓는 일보다는 먼저 간 가족의 명복을 빌고 부모나 자신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목적이 우선되었다. ‘불법을 믿어 복을 구하라’는 현세 이익에 충실했다. 미륵불, 약사불이 가난한 백성들의 구세주였다.

 불상 역사에서 한국이 이룩한 가장 높은 성취는 ‘반가사유상’이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이자 관람객 발길이 오래 멈추어 서는 곳이다. 국가지정문화재 국보 78호로 지정되어 보통 ‘국보 78호상’으로 불리는 ‘반가사유상’이 ‘국보 83호상’과 나란히 자리 잡았다. 2004년 이후 11년 만에 다시 모였다. 두 반가사유상으로 꽉 찬 단독 전시장에 들어서면 염화미소란 단어가 절로 떠오른다. 가부좌를 튼 채 실존적 사유에 골몰하는 이 생각하는 불상은 한민족에게 유달리 사랑받았다. 두 분 부처님을 비추는 특별 조명이 7초 간격으로 변하면서 해가 떠서 지는 자연의 변화를 드리우고 있다.

 또 한 분 석조반가사유상이 손님들 시선을 붙든다. 1965년 11월 경북 봉화 북지리 남쪽 구릉에서 우연히 발견된 ‘가장 큰 반가사유상’이다. 높이 170㎝, 지름 75㎝인 이 석상은 허리 아랫부분만 남아 있지만 전체 규모가 대략 300㎝에 이를 것으로 추정돼 동양 최대 반가사유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북대박물관에 들어간 이래 한 번도 외부 반출이 없었던 터라 50년 만에 첫 외출인 셈이다. 한참 이 불상을 바라보던 정림 스님은 “허리 위가 없어서 오히려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기이한 부처상”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11월 15일까지. 30일과 10월 7일 두 차례 일반인 대상 특별강좌가 열린다. 10월 30일에는 국내외 관련 전문가와 함께하는 국제학술 심포지엄이 개최된다. 02-1688-9891.

글·사진=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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