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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손-보이는 손, 불안한 동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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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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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7일 오전 금융위원회 대회의실. 임종룡 위원장을 포함한 고위 간부들이 한자리에 모인 자리에서 ‘중국 경제 스터디’가 열렸다. 금융당국이 다른 나라의 경제 상황을 놓고 이런 식의 회의를 한 건 이례적이다. 금융당국이 본격적인 위기관리 모드에 들어간 것도 이즈음이다. 증권사들에는 홍콩 항셍(H)지수를 기초로 한 주가연계증권(ELS) 판매를 자제하라는 지침이 내려갔다. 기업 부채 관리를 위해 시중은행들에 대출 심사를 깐깐히 하고 ‘좀비기업’을 걸러내라는 주문도 나왔다.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차이나 리스크 분석(중)
중국 정부 장악력 떨어지는데 시장은 스스로 설 힘 없어
증시 이어 외환시장도 변수

 회의에서 어떤 얘기가 오갔을까. 금융위 관계자는 “미국 금리 인상의 시기와 파장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하지만 중국 문제는 무엇보다 예측이 어렵다는 게 가장 큰 위험”이라면서 “어디서 험난한 파고가 닥칠지 모르는 만큼 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는 게 회의의 결론이었다”고 전했다.

 금융당국과 시장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말하는 중국 리스크의 핵심은 불확실성이다. 그런데 불확실성을 걷어줘야 할 중국 당국에 대한 신뢰마저 흔들리고 있다. 그간 시장 메커니즘이란 ‘보이지 않는 손’이 온전히 자리 잡지 못한 중국 금융시장에서 중국 당국은 ‘보이는 손’으로 시장을 통제해왔다. 그러나 ‘보이는 손’의 힘은 점차 빠지는 모양새다. 중국 시장의 규모가 커진 데다 금융 시장 개혁과 점진적인 개방으로 외부 노출도도 높아지면서다. 반면 보이지 않는 손이 스스로 조정력을 발휘하기엔 여전히 미성숙하다.

 이런 불안한 동거의 파열음은 중국 증시 급락 과정에서 민낯으로 노출됐다. 중국 당국은 시장을 다스리려 갖가지 수단을 동원했다. 상장 종목의 절반 가까이가 거래 중지됐고, 천문학적인 증시안정기금이 투입됐으며, 기업공개(IPO)도 중단됐다. 증권사에 대한 압수수색 등 ‘완력’이 행사되고 있다는 외신의 보도까지 나왔다. 하지만 대응 강도에 비례해 시장의 불안은 오히려 증폭됐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중국 당국의 대응에서 당황하고, 초조해하는 모습이 역력히 나타났다”며 “상황을 서둘러 봉합하려는 조치가 오히려 계단식 하락을 촉발했고, 당국의 신뢰까지 깎아먹었다”고 지적했다. 한번 신뢰가 무너지면 의심은 꼬리를 무는 법이다. 김익주 국제금융센터장은 “정책의 불투명성이란 리스크가 국제금융시장에 새삼스럽게 각인되면서 성장률 등 중국발 경제지표에 대한 의심도 본격적으로 제기됐다”고 말했다.

중국 역시 문제의 근원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시장화의 흐름을 되돌리기는 어렵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2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최근의 증시 불안과 관련, “감독 관리를 강화하는 동시에 시장에 자원 배분을 맡겨나갈 것”이라면서 “보이지 않는 손과 보이는 손을 모두 잘 활용하겠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증시 불안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인 ‘불씨’로 거론되는 게 외환시장이다. 증시 급락의 불을 댕긴 것도 위안화 평가절하 조치였다. 명분은 시장 메커니즘 도입이었다. 중국 당국은 매일 아침 일방적으로 고시하던 기준환율을 시장거래 가격(종가)을 반영하는 형태로 바꿨다. 금융연구원 지만수 연구위원은 “그간 달러화에 결부돼 움직이던 위안화가 달러화 강세를 못 견디고 떨어져 나온 것”이라면서 “시장화의 대가로 중국 당국은 환율 관리를 위해 이제는 직접 시장에 돈을 들여 개입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비용을 치르는 데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전격적인 절하 이후 시장이 불안해지자 중국 당국은 정책을 선회, 위안화 가치 방어에 나섰다. 최근에는 이례적으로 홍콩 역외 시장에까지 개입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그 대가로 외환보유액은 빠르게 축나고 있다. 중국의 8월 말 외환보유액은 3조5573억 달러로 전달보다 939억 달러가 줄었다. 약 4조 달러로 정점을 친 지난해 6월과 비교하면 3500억 달러가량 감소했다.

한편에선 이런 상황이 또 다른 불안을 일으킬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안유화 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제통화기금(IMF) 기준으로 중국이 들고 있어야 할 필요 외환보유액은 2조5000억 달러로, 실제 쓸 수 있는 돈은 1조 달러가량”이라며 “당장은 문제가 없지만 만약 급감세가 지속된다면 글로벌 금융시장을 흔들 태풍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jm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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