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미디어 콘퍼런스] 손석희 사장 "로봇이 기사를 못 쓰게 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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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이 21일 서울 동대문 플라자에서 열린 중앙 미디어네트워크 창립 50주년을 기념하는 `중앙 미디어 콘퍼런스`에서 ` 뉴스룸의 미래`에 대해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김상선 기자]

“로봇이 기사를 못 쓰게 하겠습니다.”

21일 서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중앙일보 창립 50주년 기념 미디어 콘퍼런스에서 연사로 나선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날 콘퍼런스 두번째 세션 '뉴스룸의 미래'에서 '뉴스룸의 변화'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직후 관객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로봇이 기사를 쓰는 시대, 스포츠 중계나 증시 기사를 로봇이 써도 독자가 알아채지 못하는 시대가 현실이 됐다. 강연 후 한 관객이 이런 시대에 JTBC와 같은 매체 기자가 무엇을 할 것인가 질문했다. 손 사장은 이에 “로봇이 기사를 쓴다는 것은 기사가 정형화되어 있다는 것”이라며 “기자들이 정형화되지 않은 기사를 써야 한다. JTBC 기자들은 로봇이 기사를 못 쓰게 하는 데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잘못된 정보의 확산이 빠른 디지털 시대에 신속하게 뉴스를 전하면서 루머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손 사장은 “한때 인터넷 상의 잘못된 논의를 집단지성이 극복하리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며 “시민 사회의 성숙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손 사장은 디지털 시대 JTBC 뉴스룸의 지향을 '디지털 뉴스룸의 아날로그 사람들'이라고 칭했다. 또 모든 것이 파편화되고 금방 소비되고 끝나는 디지털 시대의 저널리즘으로 사회적 변화를 끌어낼 때까지 하나의 어젠다를 꾸준히 제기하는 '어젠다 키핑(agenda keeping)'을 제시했다. 아래는 강연 전문이다.

뉴스룸의 변화라고 했는데 얼마나 변하고 있는가 고민을 많이 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늘 고민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디지털뉴스룸 속에서 일하는 사람은 아날로그냐 디지털이냐 하는 고민입니다. 결론은 아날로그 감성 노하우를 잃지 않는 그런 뉴스퍼슨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아마도 이 질문은 향후 오랜 기간 동안 남아있을 겁니다. 디지털은 앞서가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못 미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열등감 속에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뉴스룸 디지털로 바뀌더라도 우리 감성은 아날로그로 남아있으면 좋겠습니다.

2010년 서울에 곤파스라는 태풍이 몰려왔습니다. 피해도 많았습니다. 우리나라에 아이패드가 별로 보급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유익점' 시대였습니다. 유인촌 문화부장관이 아이패드를 갖고 있다고 얘기했다가 비난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정식 수입 전이었거든요. 그래서 부랴부랴 규정 만들어서 한 사람이 1개 아이패드 수입해서 갖고 올 때는 괜찮다고 해서 졸지에 문익점 아닌 유익점 시대가 되었습니다.

2010년 8월 일본출장 가게 돼서 아이패드 하나 구입해 왔습니다. 제가 카페에서 아이패드 꺼내면 다른 자리 사람들이 일어나서 볼 정도였습니다. 불과 5년 전입니다. 그해 9월에 곤파스가 몰려왔는데 당시 라디오 방송 진행 중이었습니다. 라디오는 가장 아날로그 적입니다. 그런데 새벽에 2시간 프로그램 진행 중 곤파스 속보를 전할 때 제가 가장 의지한 기기가 아이패드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sns 통해 굉장한 정보를 올려줬습니다. 모두 스크리닝하기는 어려웠지만 태풍 상황 가장 빨리 알려준 것이 기자 아니고 청취자들이었습니다.

아이패드 통해 2시간 동안 가장 빠른 속보를 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대중은 단순한 뷰어에서 유저로, 정보를 전달하는 센더로 바뀌었습니다. 미디어 환경 변화를 5년 전 하나의 사건으로 체험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sns는 더 확대되었고 저는 JTBC로 2013년 5월에 왔습니다. 그해 6월에 한 포털에서 제안을 받았고 10월에 현실화됐습니다. JTBC '뉴스룸'을 포털에 올린 것입니다. 한 포털에서 제안받았지만 곧바로 다른 포털에서도 제안했고 저희 뉴스는 모든 포털에 다 개방되어 있습니다.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신생 채널로서 절박감도 있었지만 이것이 하나의 진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려도 있었습니다. 기존 플랫폼 허물고 다른 플랫폼 갈 때 영향력 떨어지지 않겠느냐는 것인데 아직까지는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희 뉴스는 거의 모든 플랫폼에서 무료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고민은 거기에 있습니다. 디지털을 많이 얘기하는데 수익모델의 문제가 있습니다. 저희는 뉴스이기에 그나마 해방돼 있지만 다른 콘텐트는 여전히 그 고민에 있습니다.

플랫폼의 벽을 깨트리고 나온 것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다른 무엇인가가 솔직히 아직 발견되지 않습니다.

포털이든 sns든 거기에 맞는 콘텐트를 제공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아직까지 있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24시간 열려 있는, 특히 모바일을 공략하기 위해 우리도 24시간 열려 있어야 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어려운 문제입니다. 저희보다 규모 큰 공중파 채널도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인력과 자본이 필요한 문제, 디지털 감각도 필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방법론을 찾아야겠다는 것이 현재 생각입니다.

올드 미디어 게이트키퍼는 층이 다양합니다. 여기 학생들도 계시는데 기자가 된다면 아실 겁니다. 사실 기사 제보자가 첫번째 게이트키퍼입니다. 제보해주는 내용이 당사자의 이해관계에 많이 좌우되니까요. 그 이후에 차장 부장 국장 더 올라간다면 사장까지 게이트키퍼가 됩니다. 그때까지 드는 물리적 시간이 있습니다. 그 시간은 올드미디어일수록 오래 걸립니다. 월간지라면 한 달입니다. 주간지라면 1주일, 신문은 하루입니다. 방송은 때로는 매시간입니다. 그러나 소셜이나 모바일은 다릅니다. (디지털화는 사실 모바일이기에 모바일이라고 하겠습니다. 20대는 뉴스 소비의 70%를 모바일에서 합니다. 온 에어로 보는 사람은 적습니다. 물론 이것은 나이가 올라갈수록 역전됩니다).

결국 디지털 승부는 속보 아니냐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속보 승부는 정확도 문제가 있어 고민이 생깁니다. 올드미디어는 게이트키퍼 층위가 확고하기 때문에 실수가 줄어듭니다. 그런데 모바일 미디어로 올수록 언론의 가장 기본적 스크린 장치인 게이트키퍼는 모호해집니다. 일선 기자들이 바로 올려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보가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뉴스룸의 미래는 게이트키핑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하느냐에 상당 부분 달려 있습니다. 올드미디어의 정확성과 모바일미디어의 속보성의 조화가 관건입니다.

모바일 온리 콘텐트. 말은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모바일에 적절한 콘텐트가 뭐냐, 모바일만이 할 수 있는 콘텐트는 뭐냐에 대해 지금부터 연구가 있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모바일은 작습니다. 요즘은 태블릿보다 스마트폰으로 봅니다. 스마트폰 화면 크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게다가 대부분 누워서 봅니다. 혹은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봅니다. 작은 화면으로 전달하는 콘텐트 특성을 고민해야 합니다.

모바일로 소비하는 계층 나이도 점점 높아집니다. 88세 모친이 제게 카톡으로 사진을 보냅니다. 관련된 기사도 보냅니다. 모바일 사용 연령이 80대로 높아진 것은 사실이 됐습니다. 앞으로 이를 거역할 수 없다면 모바일 온리 콘텐트를 고민해야 합니다.

아주 작게는 하다못해 자막을 키우는 방법이라도 말입니다. 모바일로 뉴스 보실 때 지하철에서 잘 안 들리거나 잠자리에서 인터뷰 내용 자막으로 보는데 작아서 안 보인다면 키워야 합니다. 동영상의 길이, 요즘은 6초 이상 잘 안 본다고 합니다. 젊은이들 말로는 데이터 사용료 때문에 동영상을 오래 못본다고 하더군요. 매우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긴 것을 참지 못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뉴스도 1분30초 하고 있는데 이 길이는 수십년 미디어 정착되면서 굳어진 겁니다. 이보다 짧으면 정보가 없는 것 같고 이를 넘어가면 집중이 떨어진다는 것인데, 이것도 일정 부분 무너졌습니다. 앞으로 모바일 뉴스는 이보다 짧게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저희 JTBC가 고민하는 바는, -고민이라는 표현 쓰는 것은 시프트 단계라서 고민하는 것인데- 언론의 기본 역할은 어젠다 세팅입니다. 기본적이면서도 적극적입니다. 어젠다 키핑이라는 새로운 개념 도입에 공감대를 갖고 있습니다. 디지털로 갈수록 모든 것이 파편화되고 금방 소비되고 끝납니다. 이 시점에서 저널리즘이 해야 할 것은, 이것은 아날로그 식인데, 저널리즘이 해야 할 것은 어젠다를 가져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빨리 지나가는 상황에서 한두 번 세팅하는 것으로는 어젠다가 잡히지 않더군요. 그래서 고민 끝에 우리의 새로운 개념은 어젠다 키핑입니다. 그래서 시장에서의 손해도 있습니다. 시청률이 떨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널리즘이 해야 할 것은 어젠다를 꾸준히 제기하고 사회적 변화를 이끄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비교적 그에 맞게 콘텐트를 끌어 왔습니다. 부작용도 있습니다. JTBC 뉴스룸이 때로는 좀 지루하다는 인식도 있어 저희도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시대가 빨리 변한다고 해도 뉴스룸이 미래적 가치로 지켜야 할 것입니다.

일본에서 식당을 갔는데 혼자 먹는 식당이 있었습니다. 어느 식당 문 열었다가 도서관인 줄 알고 그냥 나왔습니다. 칸막이가 있고 혼자 앉아서 밥 먹고 나가더군요. 아무런 커뮤니케이션이 없었습니다.

홍콩에서 현지인들이 가는 식당을 소개받아 갔습니다. 일단 식탁이 원형입니다.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섞여서 앉습니다. 그런 큰 테이블이 십여 개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같이 앉다 보니 대화합니다. 그게 끝이 아니고, 이쪽 테이블에서 대화가 없는 사람은 다른 테이블 사람과도 얘기합니다. 그러다보니 식당이 굉장히 시끄럽습니다. 일본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제가 성신여대에서 7년 반 동안 강의했을 때의 일입니다. 학기 초는 조용합니다. 연세대에서도 강의를 했었는데 그곳과는 또 달랐습니다. 연세대는 쉬는 시간에는 조용합니다. 그런데 성신여대는 학기 초 MT를 다녀온 후 달라집니다. 일단 룸메이트가 생기고 거기서 네트워크가 형성됩니다. MT 후에는 쉬는 시간이 우박 쏟아지는 것처럼 시끄럽습니다. 홍콩에서 벌어졌던 일이 그대로 벌어졌습니다. 네트워킹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뷰어와 유저, 센더(sender)의 차이가 곧바로 디지털 시대에는 넘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일방적인 매스커뮤니케이션의 시대, 싯 백 앤 릴리즈(seat back and release)였습니다. 인터넷과 PC가 들어오면서 허리를 곧추세우게 됐습니다. 다가가고 소통하게 됐습니다. 유저가 된 것입니다. 모바일이 되고서는 곧바로 전송을 해버립니다. 마치 곤파스 태풍 때 많은 청취자가 정보를 전해주었던 것과 같습니다. 서로 주고받으며 네트워크가 되는 것입니다. 홍콩의 식당, 성신여대의 강의실처럼.

모바일 시대 미디어의 역할은 지속적으로 네트워킹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미디어가 계속 화두 제공하고 어젠다 만들고 이를 키핑하는 과정에서 가능한 것이 아닌가 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JTBC 뉴스룸이 지향하는 바입니다.

맨 앞으로 돌아가 얘기하자면 아날로그적 가치를 잃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차원에서 4가지를 추구합니다. 오래 전부터 추구해 온 가치입니다. 사실을 담은 팩트, 이해관계에 있어 공정함, 가치관에 있어서 균형, 마지막으로 품위입니다. 마지막 품위는 언론학 교과서에 나오는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추가한 겁니다. 미디어는 팽창하고 있는데 거기서 살아남는 것은 지난 몇년 간 자극적인 것이었습니다. 모든 기사엔 이런 제목이 달렸습니다. 충격, 알고보니, 결국. 이걸 빼면 기사가 안 됐습니다. 이건 저널리즘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품위만큼은 꼭 지키자는 것이 디지털 시대를 관철해가는 우리의 매우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능하다면 '아날로그 피플 인 디지털 뉴스룸'으로 살고 싶습니다. 그것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으면서 가치관도 지키는 미디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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