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한길을 간다는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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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5호 27면

일본 교토에는 ‘오멘’이라는 우동집이 있다. 유학 시절 시내에 나갈 때마다 들르던 단골집이다. 처음엔 우동의 신세계를 만난 듯했다. 야채를 세워 접시 위에 작은 산을 만들어 주는데 맛이 일품이다. 깨를 직접 갈아 먹는다거나 면이 쫀득쫀득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지만 무엇보다 주방의 바 앞에서 야채를 세우는 장인의 기술이 느껴져서 좋다. 한 번은 혼자 갔다가 야채를 세우는 주방장 앞에서 우동을 먹게 되었다. 궁금하던 차에 물었다.


“이걸 얼마나 하신 거예요?”“글쎄요. 한 9년 되었나요. 이 집에 들어와 매일 야채만 세웠습니다.”“아,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렇게 오랫동안 하시다니. 힘들지 않으세요?”“물론 힘들 때도 있지요. 하지만 이게 직업이니까요.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니 그걸로 됐습니다.”


벌써 10년 전쯤 이야기니까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다. 아직도 맛난 야채를 모아 산을 만들고 있을까?


평생 한길을 간다는 것, 장인이 되는 일에는 특별한 인내심이 요구된다. 나처럼 중노릇 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나보고 평생 야채만 세우라고 했다면 기겁을 하고 도망쳤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멘의 주방장에게 나처럼 머리 깎고 살라고 했다면 내가 한 표현을 그대로 쓰지 않았을까 싶다. 각자에게 맞는 적성이란 게 있겠지만, 어떤 일이 되었건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금방 싫증을 내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요즘엔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이 참 많은 것 같다. 자신이 하는 일이 잘 될 지 안 될 지, 영리하게 계산하고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사람이 많아서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작은 일에도 좌절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꽤 많은 것 같다. 우리 사회 현실이 그렇게 만들어서이기도 하고, 어른들이 우리를 너무 곱게 키워서이기도 하다.


예전에 이런 이야길 들었다. 요즘 사람들이 싫증을 자주 내는 건 부모님이 아이에게 어려서부터 인형을 자주 바꿔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형 하나도 소중히 간직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새 인형을 보고 졸라댈 때마다 바꾸어주니 어른이 되서도 한 길을 가지 못하고 한 사람만 사랑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좋아서 시작한 일도 금세 싫증내고, 사랑해서 결혼을 했는데도 얼마 안 가 싫증을 낸다는 것이다. 얘길 듣고 보니 어쩐지 수긍이 가면서 그럴듯한 가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도 사람도 물건도 충분히 아끼고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하는데, 언제부턴지 즐거운 마음으로 한 길을 파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뭐든 시작했으면 3년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전 같으면 10년을 기한하여 뭐든 하라고 하겠지만 지금은 세월이 너무 빨라 그렇게 몰아붙일 수도 없다. 그래서 내가 정한 전문성의 최소 시간이 3년이다. 적어도 3년이라는 시간은 투자해야 앞길이 보이는 법이다.


힘든 결정을 앞에 두고 앞으로 나아갈 지, 포기할 지 망설이는 이가 있다면 도전을 권한다. 우리 앞에는 인연들이 많기 때문이다. 땀 흘리며 노력하는 그대의 거친 숨결과 힘찬 고동소리를 기대하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원영 스님metta4u@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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