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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수 권하는 수능 … 대학 1학년 때 자퇴·휴학 5만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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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올해 고려대 사범대에 입학한 김모(19)씨는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한 뒤 대입종합학원에서 수학능력시험(수능) 준비를 하고 있다. 입학금 100만원과 한 학기 등록금 350만원을 내고 학교를 다녔지만 ‘반수(半修)생’의 길을 택했다.

김씨는 “수시모집 때 여러 곳을 지원했다가 사범대에 합격했는데 장래 희망이 교사가 아니라 경제학과를 목표로 반수를 해볼 것”이라며 “실패하면 다시 학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수능이 ‘2점짜리 틀리면 2등급, 3점짜리 틀리면 3등급’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너무 쉽게 출제돼 입시 결과를 수긍하기 어려워졌다”며 “올해도 수능이 쉬울 테니 잘만 하면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해 반수에 뛰어드는 친구가 많다”고 전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학교를 그만두거나 휴학하는 학생들이 5만 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이 18일 교육부로부터 받은 ‘전국 153개 대학 2014년 1학년 휴학·자퇴 현황’에 따르면 신입생은 모두 29만4855명이다. 이 중 17.2%인 5만779명이 1학년 때 휴학(3만9217명)이나 자퇴(1만1562명)를 했다. 이들 휴학·자퇴생들은 대부분 ‘반수생’이라고 대학 측은 밝히고 있다.

 반수생 양산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크다. 안 의원은 “자퇴생은 제대로 학교에 다니지도 않고 등록금을 낸 셈인데, 4년제 대학 평균 등록금을 각각 300만원(1학기)과 600만원(2학기)으로 계산해 자퇴생(1학기 5000명, 2학기 6000명)이 지불한 등록금 규모를 추산하면 약 500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쉬운 수능 탓 재도전 늘어 … 강원대는 34%가 학업 중단

그는 “고교 시절 사교육비를 대느라 고생한 부모 입장에선 다시 등록금을 날리고 많게는 1000만원이 넘는 대입 학원비를 지원해야 하기 때문에 이중삼중의 부담을 지게 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신입생 휴학·자퇴생 비율이 30%를 넘는 대학도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강원대는 신입생 5334명 중 1학년 때 휴학·자퇴를 신청한 학생이 33.7%(1798명)에 달했다. 계명대·경북대도 휴학·자퇴를 한 1학년이 1000명 이상이었다. 한 지방대 관계자는 “요즘은 학부모가 대학에 전화를 걸어 ‘반수를 하려는데 어떻게 휴학하느냐’고 대놓고 물어본다”고 말했다.

 신입생들의 휴학 신청이 쇄도하자 상당수 대학은 질병이나 군 입대가 아니면 1학년 1학기 휴학을 금지하고 있다. 단, 서울대는 입학 직후 휴학을 허용한다. 이에 따라 지난해 서울대 신입생 중 1학기에 447명이, 2학기에 425명이 휴학했다. 자퇴까지 포함한 1학년 학업 중단자는 서울대도 27.3%에 달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군 휴학 외에는 구체적인 사유를 밝히지 않지만 다시 입시를 치르려는 것으로 짐작한다”고 말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이사는 “의대나 더 좋은 학과를 목표로 재도전하는 서울대 신입생이 꽤 있다”고 전했다.

 입시전문가들은 반수생 규모를 6월에 모의평가를 치르는 재수생 숫자와 실제로 수능을 치르는 재수생 수를 비교해 추정하고 있다. 반수생의 경우 6월 모의평가에는 응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결과 2014학년도 때 6만8284명이던 반수생이 2016학년도에는 7만5130명으로 증가했다.

 대학 신입생들이 반수에 나서는 것은 1차적으로는 ‘물수능’ 때문이다. 지난해 수능은 수학B형에서 만점을 받아야 1등급에 들고, 영어도 역대 수능 중 만점자 비율이 가장 높을 정도로 쉬웠다. 반수 중인 이모(20)씨는 “수능이 1년간 학업에 매진한 수험생의 실력을 판별할 정도로 출제돼야 하는데, 과목별 난이도에 따라 특정 영역에서 한두 문제만 실수해도 갈 수 있는 대학이 엇갈리니 만족할 수 없게 된다”며 “더욱이 ‘올해도 수능이 쉬울 테니 해볼 만하다’고 기대하게 되니까 반수생이 속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로와 무관하게 전공을 택하는 대입 지원 경향도 학업 중단자를 양산하게 하는 이유다. 한국외국어대 경영학과를 1학기만 다니고 반수 중인 안모(21)씨는 “원래 행정학이나 사범대를 지망했는데 여러 학과를 지원하다보니 경영학을 전공하게 됐다”며 “취업에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내 적성에는 잘 맞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보험 들 듯 안정권 대학에 합격해놓고 재도전에 나서는 경향이 뚜렷하다. 임성호 대표는 “수시에서 6번이나 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한 곳 정도 안정 지원을 해 적을 두고 재수하는 게 신(新)풍속도가 됐다”며 “특히 인문계는 취업에 대한 공포가 커지면서 3~5등급 학생들이 서울 소재 대학과 취업이 유리한 학과로 가기 위해 반수를 많이 한다”고 했다.

 김종우(양재고 교사) 한국진로진학교육학회 운영위원장은 “과도한 ‘물수능’이 반수를 낳는 요인이 되고 있으므로 수능은 상위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변별력을 갖추도록 출제돼야 한다”며 “적성이 안 맞아 자퇴하는 신입생도 많기 때문에 중학교 때부터 학생들의 적성을 찾아주도록 진로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성탁 기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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