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되셨죠? 지금 어떠세요" 위험천만 취재 과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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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범행 진행 도중 인질에게 기자가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어본 일이 잇따라 일어나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12일 오후 6시30분쯤, 충북 제천에서 20대 여성이 "내 친구가 차에 납치돼 서울로 가고 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충북경찰청과 경기경찰청은 주요 도로에 경찰관을 배치하고 긴박한 추격전을 펴 오후 11시쯤 수원 부근에서 범인을 붙잡았다.

인질을 구출하고 범인을 압송해온 직후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전화가 걸려왔다. "저 ○○○사 기잔데요, 지금 어떤 상태입니까. 잡혀 있습니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건 전화였다. 납치한 사람의 가족 외에 경찰이나 다른 사람이 사건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될 경우 범인이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그날 밤 주부 趙모(33.수원 거주)씨의 납치 자작극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졌다. 趙씨는 남편의 휴대전화에 '부인을 납치했다. 현금 5천만원을 준비하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 자신이 납치된 것처럼 연극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빚을 갚기 위해 꾸민 일이었다.

비상이 걸린 경찰이 휴대전화 위치 추적으로 범인을 쫓고 있던 오전 1시쯤. 초조한 심정으로 경찰과 함께 있던 남편에게 범인으로부터 메시지가 날아왔다. '조금 전 ×××사 기자가 네 마누라에게 전화했다. 허튼짓 말라고 했는데. 네 마누라 살려두지 않겠다'는 내용(실제로는 부인 趙씨가 범인을 가장해 보낸 메시지)이었다.

확인 결과 모 방송국 야근기자가 경찰의 상황보고서를 보고 피해자 휴대전화로 전화를 한 거였다. 趙씨의 자작극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실제상황이었다면 피해자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취재였다.

두 사례는 사건 수사에 참여한 한 경찰관이 경찰청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면서 알려졌다.

경기경찰청 수사간부는 "인질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건 피해자의 안전"이라며 "범인이 경찰, 심지어 기자까지 이 사건을 알고 있음을 알아챘다면 인질은 어떻게 되겠느냐"고 어이없어 했다.

경찰은 그동안 취재 협조 차원에서 주요 사건이 벌어졌을 때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그대로 언론사에 넘겨주는 관행에 문제점이 드러남에 따라 앞으로는 신상자료 제공에 신중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 방송사 측은 "본사 기자가 야근 도중 별다른 생각 없이 전화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윤창희 기자

*** 바로잡습니다

6월 17일자 9면 '위험천만 취재 과욕'제하의 기사에서 지난 6월 충북 제천에서 발생한 인질사건의 범인이 체포되기도 전 언론사 기자가 납치 상태의 피해여성에게 전화를 걸어 위험에 빠뜨렸다는 보도는 확인 결과 이미 범인이 검거된 상황에서 피해여성에게 전화취재를 했던 것으로 밝혀져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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