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피겨 후진국의 벽, 단숨에 뛰어넘은 ‘여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피겨 여왕’ 김연아는 7세 때부터 스케이트(사진)를 타기 시작했다. 초등학생 때 트리플 악셀을 제외한 3회전 점프 다섯 가지를 모두 익혀 ‘피겨 신동’으로 불렸다. 차가운 얼음판에 수백 번씩 넘어지면서 얻어낸 결과였다. 2002년 4월 슬로베니아 국제대회에 참가했던 김연아는 노비스(13세 미만 출전) 부문 1위에 오르며 피겨 기대주로 급부상했다.

 김연아가 세계 무대 전면에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은 피겨 후진국이었다. 그러나 김연아는 단숨에 한계를 뛰어넘었다. 일본의 동갑내기 라이벌 아사다 마오(25)와의 경쟁도 그를 더 자극시켰다. 2004년 9월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한국 피겨 역사상 첫 우승을 이룬 김연아는 이듬해 11월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2006년 3월 주니어 세계선수권을 석권했다.

 16세이던 2006년 성인 무대에 뛰어든 김연아는 같은 해 12월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을 차지했다. 2009년 3월엔 여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쇼트·프리 합계 200점(207.71점)을 넘어서며 세계선수권 정상에 올랐고,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때는 피겨 여자 싱글 사상 최고점(228.56점)으로 금메달을 따내며 ‘피겨 퀸’으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2011년 세계선수권 이후 1년여 동안 휴식기를 보낸 김연아는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했다. 그는 이 대회에서 완벽한 연기를 펼치고도 은메달을 땄다. 판정 논란이 생겼지만 김연아는 “스스로 만족했기 때문에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김지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